고은 시인의 [무제시편 無題詩片] 2013.11.20 출간
'시인들의 위대한 샤먼' 고은 '무제 시편'..20일 출간
최종수정 2013.11.18 14:07기사입력 2013.11.13 10:30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우리 시대 시인들의 위대한 샤먼' 고은(81), 최근 몇년새 10월이면 온 국민이 '노벨문학상' 후유증을 앓는다. 세상이 민망한 정도로 호들갑스러운 시간, 정작 그는 집에 들지 못 한다. 해마다 한번씩 홀로 잠적해야 하는 고은의 노년에는 불가의 수도자, 작가, 민주 투사로 살아야했던 삶 못지않은 파란만장함이 보태진다.
세상의 과도한 관심사는 고은에겐 싸울 수도 없고, 말릴 수도 없고 항변할 수도 없는 외로움이다. 인간의 존재성과도 맞서고, 독재의 칼날도 막아섰던 그조차 상패 하나로 고은문학을 논하는 세상 사람의 저급함은 도저히 맞설 수 없는 탓이다. 그래서 고은은 잠시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났다 돌아오기를 거듭한다.
고은을 세상으로부터 잠적케 하고 귀환케 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고은이 죽는 날까지 읊고 찬양하고 싶었던 만인보속의 주인공들이다. 그럼에도 고은은 우리를 등지지 않음으로써 우리에게 있어 시인의 '샤먼'임을 증명한다.
고은은 지난 8월 30여년이나 정들었던 경기 안성 공도읍 대림동산에서 생활을 접고 수원 광교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이사 전, 올해 고은은 여러 대륙을 여행하며 해외 문학 행사에 참여, 시를 읊고 노래했다. 고은은 올 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체류하면서 4월 이탈리아 까포스까리 대학으로부터 명예 펠로쉽을 받고 5월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세계시인대회에 참가했다.
8월에는 칭하이 국제시인대회에 초청받아 중국을 방문하고 9월에는 22일간 시베리아를 열차로 횡단하기도 하는 등 세계 시단을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 왔다.
그 만행의 결과물이 신작시집 '무제 시편'(창비시선 출간, 20일)이다. 이번 '무제 시편'은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연시집 '상화 시편: 행성의 사랑'을 낸 지 2년 만이다. 이번 시집은 총 607편, 1016쪽이라는 그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더구나 이 엄청난 시들은 고작 반년 만에 씌어졌다.
고은의 창작열은 식을 줄 모르고 오히려 폭발하듯 분출, 압도한다. 이번 시들은 광활한 시공간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사유와 유장하고 분방한 언어로 이뤄졌다.
시집은 전작 '무제 시편'과 '부록 시편'으로 구성돼 있다. 총 539편에 달하는 '무제 시편' 은 이번 시집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전작 시편들이다. 올 봄부터 가을까지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곳곳을 오가는 여행과 체류 동안 쏟아져 나온 것이 '무제 시편'인 셈이다.
'무제 시편'을 통해 시인은 대륙과 대륙을 넘나들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넘나들며 시정신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또한 한편 한편 비범한 시적 사유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시를 둘러싼 모든 편협과 속박마저 떨치고 ‘시의 모국어’라 할 드넓은 대지를 탐사하는 이 대시인의 발길은 달리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 시의 독보적인 성취다.
이어지는 '부록 시편'은 '무제 시편'과는 별도로 '내 변방은 어디 갔나'와 '상화 시편' 이후 발표한 근작시들을 주로 묶었다. 총 68편에 이르는 이 시들은 그 자체 한권의 시집으로 묶이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분량이다.
특히 '부록 시편'은 안성 시대를 마감하고 최근 수원으로 이주한 시인의 소회가 생생히 담겨 있다. 앞으로 열릴 고은 시세계의 새로운 국면을 예감하게 하는 시들로서 의미가 깊다.
고은 시인은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고도의 예술적 열정으로 작품세계의 변모를 거듭하고 있다. '무제 시편'은 그런 시인의 현재적 성취와 미래의 방향까지 확인할 수 있는 더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난 2005년 11월 노벨상의 본고장 스웨덴 언론들은 당시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였던 고은 시인의 스웨덴어 시집 '만인보와 그외 시들'(아틀란티스, 한인자·카롤라 레르멜린 역) 출간에 맞춰 특집호를 실는 등 깊은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당시 스웨덴의 유력 종합일간지 '스벤스카 다그블라뎃(Svenska Dagbladet)'은 시집 '만인보와 그외 시들'에 대해 '신화 같은 서사시에서 떠오른 시선집'이라고 평했다. 더불어 "만일 스웨덴 한림원이 시 부문을 배척하지 않았다면 한국시인 고은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이 적격이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한 다른 언론들은 '군산의 제왕', '한국의 드라마틱한 현대사 그 자체'로 고은을 칭하는 등 온갖 찬사를 보였다. 그해 고은은 오르한 파묵(터키), 토마스 트란스트뢰뫼르(스웨덴)와도 만나 교우를 나눴다.
국경과 언어를 넘는 고은 문학은 1958년 '현대문학'지에 '폐결핵'(조치훈 추천)을 발표하면서 시작된다. 고은의 본명은 고은태(?銀泰, 1933년 8월1일~)다. 소설을 쓴 적도 있으나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은은 학창시설 나환자 출신의 시인 한하운 '황톳길'을 보고 전율, 시를 쓰게 됐다고 여러번 술회한 적 있다.
1952년 일초(一超)라는 법명을 받고 불교 승려가 돼 10년간 참선과 방랑 등 만행을 펼치며 시를 썼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내고 1962년 환속,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임했다. .
1974년 펴낸 '문의마을에 가서'는 암울한 시대 상황에 대한 비판을 담아 허무와 절망 등 탐미적인 세계를 다룬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이후 '자유실천 문인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며 민주화 투사로 거듭나기도 했다.
현재 고은의 작품은 20여개 국가에 번역돼 있으며 유럽에서는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2005년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나이 여든, 여전히 폭발적인 고은의 시정신은 가히 한국문학뿐 아니라 세계 시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그를 지독한 외로움속에 위리안치시켜도 결코 다시 우리를 떠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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