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9)
소의 말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민족화가로 평가되는 화가다. 생애의 말년이 지극히 비극적이었던 분이다.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평북 정주의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하며 그림에 눈을 떴고 일본에 유학, 서양화 공부를 하면서 일본 여인(마사꼬, 한국명 李南德)을 만나 사랑하고 고향에 돌아와 결혼했다(1945년 5월). 잠시 행복했으나 6·25 전쟁이 일어나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다시 제주도로 건너가 서귀포에 잠시 살기도 했다(1951년).
서귀포에 살면서 피난민에게 주는 배급과 고구마로 연명하는 한편 게를 잡아 반찬을 삼았다 한다. 전부터 소 그림을 좋아했는데 이 시절, 소 그림에 다시 열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제한된 평안도 잠시. 이중섭 일가는 부산으로 다시 거처를 옮기고 이듬해(1952년) 부인과 두 아들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화가는 혼자가 되어 가족을 그리면서 수없이 많은 편지와 엽서 그림을 그려 가족에게 부치면서 견기다가 결국 영양실조와 간염으로 오로지 홀로 세상을 떠난다(1956년).
천재적인 화가. 그렇지만 그는 일본과 한국, 6·25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제물이라 할 것이다. 분명 세상을 한발 앞서서 살았기에 불행했던 예술인이었다. 그렇지만 그 예술의 정신만은 지극히 드높았던 인물이었다. 오늘날 그가 잠시 머물었던 제주도 서귀포시에 ‘이중섭 거리’가 지정되고 이중섭미술관이 세워졌다는데 그의 불행했던 생애와 지극히 아름다운 미술세계에 얼마만한 위로와 도움이 될까.
이중섭은 결코 시인이 아니다. 그렇지만 서귀포에서 살 때, 그러니까 다시 소 그림에 열중할 때 이런 시를 자기 방에 써서 붙여놓고 보았다고 한다. 그걸 함께 살던 조카(이영진 씨)가 외워두었다가 세상에 전한 내용이다. 그림의 격이 높은 것처럼 시의 격도 높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절로 돈다. 시의 앞과 뒤는 소에 관한 느낌이거나 소묘다. 그렇지만 중간에 보이는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란 구절은 이중섭의 인생철학이다.
아, 그 이중섭! 만난 적 없지만 누구나에게 그리운 사람! 오늘날 우리네 삶도 여전히 외롭고 서글프고 그립답니다.
-출처:http://cafe.daum.net/KEAA(재미수필문학가협회)
'문학 > 문학관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 (7) - 산 너머 저쪽 / 칼 붓세 (0) | 2013.09.15 |
---|---|
[스크랩]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8) - 사막 / 오르팅스 블루 (0) | 2013.09.15 |
[스크랩]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9) - 소의 말 / 이중섭 (0) | 2013.09.15 |
[스크랩] 나태주 시인과 함께 떠나는 명시여행(10) - 그리운 바다 / 존 메이스필드 (0) | 2013.09.15 |
[스크랩] [나태주] 풀꽃 (0) | 2013.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