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한계선에서
운산 최의상
화랑담배 연기로
다정한 얼굴들이 피어나는 지금
나는
당신의 슬픈 이야기에 귀담아 들을
신명이 집히더이다.
남방한계선 가시철조망에 걸린
하얀 송판의 붉은 글을 읽는다.
非 武 裝 地 帶
進入 禁止
진입 금지
DO NOT DEMILITARIZED ZONE
영어까지 섞인 붉은 글씨,
읽고, 읽고 또 읽는다.
어쩌면 그리 술술 읽혀지면서도
미도파 앞 구걸소년을 보던 아픔 보다
더 쓰리고 아픈지.
남북한계선 4km DMZ는
비록 이별초차 묵은 능선이지만
슬픔이 자라 영근 꽃 풀섶이지만.
애정도 끊인 북녘 마을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죽어간 어머니의 얼굴이어라.
남방한계선 저 멀리
내 어머니의 허리를 밟고
내 어머니의 젖꼭지를 물고 잠든
아가를 본다.
달빛만이 고요할 뿐이다.
1962.10 김화 정연리 104 OP.에서
남방한계선 철조망에서 DMZ 너머 북의 마을을 보며
죽은 엄마 젖꼭지를 물고 자는 아가의 머리 위로 전쟁의
역사가 먹구름처럼 흘러가고 있음을 본다.
'문학 > 최의상 詩人 詩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말복 (末伏) (0) | 2013.08.12 |
---|---|
내 영혼의 눈물 같은 가을 (0) | 2013.07.29 |
행복 (0) | 2013.07.28 |
추억단상(追憶斷想) (0) | 2013.07.15 |
6월 소묘 (0) | 2013.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