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가와 문학

들리는 소리

운산 최의상 2013. 6. 29. 09:24

 

 

 

 

들리는 소리’

                원재길(1959∼)

 

 

1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2

너의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으로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

 

너는 사람이며

색은 소리이다

너 자신도 색임을 이해하여

소리인 사람과 섞여 살아라

그 소리에 옷 얻어 입고

가구 받아들이고

 

바쁜 날 천리마 얻어 타고

두 눈은 멀리 가는 빛 얻어 번쩍일 때

너는 언제까지나

너답게 살아라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

    

 

아주 짧은 곡이었다. 각 장의 연주시간은 1악장 33초, 2악장 2분 40초, 3악장 1분 20초. 작품이 초연된 것은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 주 우드스톡 야외공연장.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피아니스트는 연주를 시작하지 않는다. 그저 간간이 악보와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덮개를 몇 번 여닫고 퇴장한다. 미국의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란 곡이다. 웅성대는 소리, 바람 소리, 주변 소음 등 연주 시간 동안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현대음악사에 이정표를 세웠다는 ‘4분 33초’는 악기가 연주하는 선율만 음악이라는 틀을 깨뜨렸다.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담아내면서 관객이 내는 다양한 소리와 우발적 소음까지 작품에 수용한 것이다. 한국에는 2008년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이 작품이 등장해 널리 알려졌다. 케이지는 1972년 보스턴에서 직접 공연을 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정신적 스승의 이 기이한 ‘연주’에 “이것은. TV를 위한 禪이다. 지루함을 즐겨라” 같은 문구를 덧붙여 영상작품 ‘존 케이지에게 바침’(사진)을 제작했다.

공동주택이 곧 집과 동의어가 된 한국 주거공간에서 빚어지는 ‘층간 소음’ 분쟁이 사회문제로 부상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작품이다. 이웃 간 감정싸움이 끝판으로 치닫는 것도 불사할 만큼 갑자기 심각해진 상황이다. ‘층간 소음 공감 엑스포’가 열리고 ‘층간 소음 관리사’란 직종도 생겨났다. 누구나 알면서 숨죽이고 살아온 생활의 조건이 어느 날부터 공론화된 것이다. TV 속 온갖 코너에 단골 소재로 등장해 다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저마다 울분을 토해낸다. 상당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 처지임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어김없이 소리의 무차별 공격에 고통을 겪은 듯한 원재길 씨는 시인답게 한걸음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걸친 옷도, 쓰는 가구도 다 소음에서 왔다, 그러니 일상의 소리 뒤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생각하고,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바라보라고 지혜의 한 토막을 들려준다.

케이지는 초연 후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나는 사람들 주변의 소리가 연주회장에서 듣는 음악보다 더 흥미 있는 음악을 만들어낸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도록 이끌어주고 싶다.” 세상의 많은 소리를 우리 자신이 연주하는 곡처럼 해석하거나, 사람 그 자체로 받아들이거나. 둘 다 쉬운 일은 아니겠다 싶지만 선택하긴 해야 할 것 같다.

고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