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時調

[스크랩] 시조는 왜 3.4조인가?

운산 최의상 2013. 5. 28. 16:33

시조는 왜 3.4조인가?

 

                                                                                                                  이 봉 수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시조는 ‘3.4조를 바탕으로 3장 6구 12음보로 구성된 한국형 정형시’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말에는 서로 다른 개념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3.4조를 바탕으로 한다는 것은 자수로 재단한다는 뜻이며 12음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음보로 재단한다는 뜻이다.

  자수율이냐 음보율이냐는 시조형식을 논함에 있어 정격시조이냐 파격시조이냐를 구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일찍이 김춘수 시인은 [한국어는 언어의 성격상 음수가 음보를 이룬다](김춘수 저 <시의 이해와 작법>P38)고 하며 [한국어는 체언에 조사가 붙고, 용언의 어간에 어미가 붙으면 대개 3음 아니면 4음이 된다. 그러니까 한국시의 음수율은 3.4 아니면 4.4가 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위 P13)고 음수를 강조한 반면, 김제현 교수는 [한국시가의 음율을 자수로 밝힌다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음수율에 의한 형식규명은 고립어와 개음절어로 이루어진 시가는 가능하지만 부착어인 우리시가의 연구방법으로는 온당한 것이 못된다](김제현 저 <시조문학론>P58)고 하여 음보를 강조하였다. 서로 반대되는 논리이다.

 

  오늘날의 시조론은 음수를 중심으로 3434 344(3)4 3543을 정격시조라 하였으나 정형을 지키기 어려움을 내세워 자수의 가감을 허용하는 음보율로 바뀌었다. 고시조의 상당수가 음보율로 구성되어 있음을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어 음보율은 다수설이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자수를 무시하고 각인각색으로 시조를 변형시켜 현대시조는 자유시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며 시조장르의 해체위기에까지 이르렀다.

 

  따라서 현대시조는 완전한 정형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고시조의 시조개념을 버리고 사설시조나 엇시조를 제외한 평시조만으로 정형을 확립하는 한 편 교과서적인 음수율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이 음수율을 다른 각도에서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보면

 

●●

3 4 3 4 3 4 4 4 3 5 4 3

 

  한민족의 대표적인 고유가락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와 정서가 같음을 알 수 있다.

  초장에서 잔잔한 물결이 일고 중장에서 악간 높아진 다음 종장 첫 구에서 클라이맥스(climax)를 찍고 스르르 스며들며 여운을 남기는 멋이 바로 한국적이다. 한민족의 감정이 아니고는 100% 감상이 어렵다. 여기에 1자라도 가감을 하면 리듬이 흐트러진다. 글자 수를 무시할 수 없다.

  중장 3444는 3434로 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초장과 꼭 같아짐으로 아름다움이 덜 하다. 변화의 미(美)가 없다. 부득이 한 경우가 아니면 3444로 함이 좋을 것 같다.

 

  현대시조는 3.4조를 버릴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시조는 3.4조를 기본으로 한 4.4조, 3.5조 및 4.3조의 절묘한 조합이다. 이러한 시조의 구조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700년의 전통과 정서가 녹아 있는 유산인 것이다.

  누가 이 구조를 허물어 쉬운 자유시의 흉내를 내며 ‘시조’라고 한다는 말인가?

 

  이하 최근의 시조현장에서 3.4조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는지 살펴본다.

 

 

1. [월간문학]의 작품들

 

(1) 11.4월호

 

  시조 11편이 실렸으나 정격시조는 1편도 찾아 볼 수 없다.

[세월](정재호), [화입(火入)](오승철), [벽](이처기), [봄이 오는 소식](정임현), [판사는 어렵겠다](조영두), [장 노인 장보기](김종길) 등 6편은 정형을 무시한 변형 또는 사설시조이고, [해운대](허혜수)는 수의 구별이 없는 변형시조이다. [망초](장인석), [바다](조성국), [심상](최순향), [목욕탕 박 사장의 서울 입성기](김명호) 등 4편은 비교적 정형에 가까우나 약간의 파형음보가 보인다.

 

  아래 작품도 시조라고 할 수 있을까?

 

       봄이 오는 소식

                                                               정임현

 

찬 바람/ 드센/ 눈보라/ 지나가니/

메마른/ 나목들도/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따뜻한/ 햇살 받아/ 봄을 열듯/ 숨쉬네/

 

뒤산에/ 산새들도/ 짝을 찾아/ 노래하고/

비학산/ 바라보니/ 양지쪽/ 어린 모습/

우수 경칩/ 다그는 소리/ 새봄맞이/ 움트네/

 

하늘도/ 푸러르니/ 대소연도/ 고요하고/

까막까치/ 소작(巢作) 역사/ 사랑의/ 보금자리/

산수유/ 꽃으로/ 촌락의 향기가/ 피어나네./

 

  종장의 정형 3543에서 첫째 마디 3과 둘째 마디 5를 태연하게 위반하고 있다. 3.4조 율격이 깨진 것은 물론, 한글맞춤법도 틀린 곳이 있다. [뒤산]은 [뒷산]으로, [푸러르니]는 [푸르르니]라야 맞지 않을까?

 

 

(2) 11.5월호

 

  7편의 시조 중 [낙산사](신익교), [상수재(湘水齋)에서](홍영표) 등 2편은 정격시조이다. [인생 온 해, 그 절정(絶頂)에 서서](鄭韶坡), [시인들의 묘비](서태수), [선운사 가는 길](이옥분), [무청](전학춘), [바양노르솜의 밤](김선화) 등 5편은 수의 구별이 없거나 파형음보가 많은 변형시조들이다.

 

        낙산사

                                                              신익교

 

석공(石工)이 다듬질한 처마 끝 해안선에

좌선한 우담바라 물안개를 피웠더라

벼랑 끝 무지개꽃은 바라밀경 열었네

 

해송(海松)은 머리 풀어 바람에 빗질하고

초막집 난간 너머 해와 달 숨바꼭질

연등은 벼랑 끝 너머 서방 정토 밝힌다.

 

  한 음보도 흐트러짐이 없는 정격시조이며 [석공(石工)이 다듬질한 처마 끝 해안선], [해송(海松)은 머리 풀어 바람에 빗질하고] 등 좀처럼 보기 드문 표현이 돋보인다.

  그러나 명소를 찬양하거나 풍경을 묘사한 기행시(紀行詩)는 아무리 잘 지어도 많은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곳을 가보지 아니한 독자들에게는 꿈속의 이야기같이 들리기 때문이다.

 

 

(3) 11.6월호

 

  <월간문학>에서 시조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 파격이 심하여 정형시로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인가?

이달에 실린 6편의 작품 중 [공황(恐慌)](이정자), [넙치, 도시를 점령하다](심응문) 등 2편은 정격시조이고, [무적(無跡)](전규태), [솟대](김대현), [별빛 보호지구](손증호), [눈물](심석정) 등 4편은 파형시조이다.

 

 

  넙치, 도시를 점령하다

                                                              심응문

 

침묵의 해저에서 언어는 도태되고

조그만 화면 속에 모여지는 두 눈이다

아이폰 유전자가 낳은 우리들의 미래상.

 

  현대의 도시민을 넙치로 변용(變容)하였다. 해저의 침묵 속에 사는 넙치들처럼 바깥세상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아이폰만 들여다보는 모습이 우리들의 미래상이라고 하며 최첨단 문명의 이기 속에 파묻혀 인간성을 잃어가는 현대인을 개탄하고 있다.

  고루한 19C 낭만시나 서정시의 탈을 벗고 현대적인 시법을 구사하고 있어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굳이 흠을 잡자면 [침묵], [해저], [언어], [도태] 등 한자어가 겹쳐서 마치 딱딱한 논문을 읽는 기분이다. 이 작품의 시어로는 적절하지 못한 것 같다. [적막한 바다 밑에 말소리 가라앉고] 정도면 어떨까?

 

 

(4) 11.7월호

 

  시조 11편 중 [5월의 풍경](장금철)과 [자연보탑(自然寶塔)](전갑열) 등 2편은 완벽한 정형을 갖춘 정격시조이다. 이에 비하여 [무제(無題)](정완영)는 파형음보가 많고, [만선(滿船)](전영순)은 첫째 수에서 종장 3543의 정형을 3445로 마음대로 바꾸어 놓은 사이비시조이다.

  [묵무덤봉](김은남), [벚꽃사랑](전향아), [고독의 등불](최도열), [수박 속 풍경](김영완), [세종로 가을비의 19시](김태희), [비움과 울림](연기석), [육십령 우적가](김윤승) 등 7편은 수의 구별이 없거나 파형음보가 있어 정격시조의 반열에 들지 못하겠다. 

 

  5월의 풍경

                                                   장금철

 

초대장 안 보내도 다가온 5월이라

청보리 익어가는 들판은 푸른 물결

영산홍 맨얼굴 같은 한국인의 매무새!

 

  단수로 5월의 싱싱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종장에서 [한국인의 매무새]로 끝을 맺고 있어 형식상으로는 꼬리가 잘린 감이 있고 의미상으로는 5월의 자연을 찬미하기보다 한국인의 매무새를 자랑하고 있어 옆길로 빠진 감이 있다. 한국인의 매무새가 ‘영산홍 맨얼굴 같다’는 비유도 적절하지 못하다.

 

    무제(無題)

                                                                           정완영

 

사람이/ 세월을 살아,/ 그것도/ 살 만큼 살아/

옛마을에/ 돌아와서/ 초막 아래/ 누웠자니/

가을 밤/ 북두칠성이/ 내 등에 와/ 실립니다./

 

내 등은/ 거북이 등이라/ 굽을 만큼/ 굽었는데/

하도(河圖)인지/ 낙서(落書)인지/ 만파식적(萬波息笛)/ 곡조인지/

짊어진/ 하늘이 무거워/ 잠이 오질/ 않습니다./

 

  시는 시적화자를 내세워 작품 안에서 할 말은 하되 작품 밖에 있는 시인은 나이, 직업, 환경 등을 감추고 정체를 알 수 없도록 하여야 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 고령의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 것임을 바로 알 수 있다. 또한 둘째 수 중장 [하도(河圖)인지 낙서(落書)인지 만파식적(萬波息笛) 곡조인지]는 초장의 [내 등]을 잘 꾸미지 못하고 물, 글, 노래 등으로 생각을 흩어 놓아 초점을 잃고 있다. 첫째 수의 [초막]은 현대생활에서 볼 수 없는 옛 풍물이며 둘째 수의 [하도(河圖)] 등 한자어는 이 시대의 정서에 어울리지 않아 젊은 독자들이 노인 시라고 하며 외면할 수 있겠다.

 

   만선(滿船)

                                         전영순

어부는/ 하도 젊어/

고깃비늘보다/ 더 비려서/

차마/ 낚지 못한/

달 한 덩이의/ 바다/

너울로/ 뒤척이다/

섬이 되어/ 잊기도 했네/

                                           (2수중 첫째 수)

 

  종장 둘째마디 [뒤척이다]는 4음절로 시조이기를 포기한 변형이다. 이 작품은 내용 면에서는 젊은 어부의 처지를 잘 묘사하고 있으나 시조형식을 깨고 자유시의 리듬을 타고 있어 시조마당에 들어와서는 안 될 작품이다.

 

 

(5) 11.8월호

 

  시조 6편이 실렸으나 1음보도 깨지지 않은 정격시조는 1편도 없다. [사다리](김월준)는 수의 구별이 없는 1연 9행의 자유시이며, [사계절의 노래](박상륜), [고가(古家)](이동배), [여기로 이어진 저기](김성열) 등 3편은 깨진 음보가 많다. [고향](우숙자)은 3수 연시조로 졍격에 가까우나 1음보 파형이 있다.

  다음 작품은 어떤가?

 

    8자 풀이

                                                             성철용

 

가로로 자르면/ ‘0’,/ 세로로 자르면/ ‘3’/

눕혀 보면/ 그 ‘8’자,/ 무한대/ ‘∞’이 되니/

그대여,/

실망하지 말고/

가능성에/ 도전하시라/

 

타고난/ 사람 ‘8자’가/ ‘Zero’라/ 탓을 말고/

평생에/ 기회를/ ‘3번’ 이나/ 맞는다니

인생길/

‘∞’ 앞세워서/

무단이/ 도전하시라./

 

  2수 연시조로 각 수 3장 6구는 갖추었으나 숫자 ‘3’과 ’기호 ‘∞’를 무리하게 시에 도입하여 특이한 작품을 빚어내려고 하니 엉망이 되었다. 전편에 걸쳐 3.4조의 시조 율격을 잃어 자유시가 된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시를 어떻게 낭송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는 보고 뜻을 알 수는 있으나 ‘발음을 할 수 없는 기호’이기 때문이다. 시는 글의 예술이다. 시각적인 모양을 보는 기호나 그림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2. 계간지의 작품들

 

(1) [계절문학]<11여름호>

 

  시조 17편 중 정격시조는 [한생각](김석철), [배꼽](박철구), [쓰나미](이봉수), [봄이 오는 길목에서](고재구) 등 4편에 불과하다.

  [연평도](김교한), [물 위에 뜬 판화](김정희), [달방석](임영석), [네잎 클로버](홍성란), [엄마는](서일옥), [누가 뭐랬나](나순옥), [미인도(美人圖)](김무섭), [깊은 밤](신대주), [옷](배인숙) 등 9편은 수,장의 구별이 뚜렷하나 깨진 음보가 더러 있다.

[홍도의 노을](김양수), [산다는 것은](원수연), [여름 운현궁](이승은), [거울](김복근) 등 4편은 깨진 음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자유시의 흉내를 내어 수의 구별을 없앤 변형시조이다.

 

  정형을 벗어난 작품이 과연 정격시조보다 표현과 내용이 좋은지, 아니 정격시조로는 표현이 제대로 안되고 작품성이 떨어지는지? 2작품씩 골라 독자에게 판단을 맡긴다.

 

    연평도

                                                                     김교한

 

잊어서는/ 안 될 기억/ 설마 하고/ 지낸 날에/

뱃길도/ 생사 안부도/ 탄막(彈幕)에/ 묻힌 한 나절/

서해/ 그 뜨거운 우리 지도/ 가슴에/ 파고든다/

 

가물거린/ 속심지에/ 새벽 빛/ 불을 당겨/

흩어져/ 표류하는/ 시선(視線)을/ 불러모아/

동트는/ 울림이/ 푸른 내일을 여는/ 연평도./

 

 

   네잎 클로버

                                                               홍성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운이란/ 무얼까/

아련히/ 흔들리는/ 네 이름/ 부를 적마다/

잠시간/ 떠다니는 기분,/ 아마 그건/ 아닐까./

 

 

  한 생각

                                                   김석철

 

힘겨운/ 한 생인걸/

치장했네/ 즐겁다고/

 

나름의/ 핑계여라/

의미도/ 갖가질세/

 

내꿈은/

한낱 뜬구름/

짓고 허는/ 형상일 뿐./

 

 

      쓰나미

                                                             이봉수

 

바다는/ 병이 나서/ 뱃속이/ 뒤틀리고/

쓰나미/ 거센 파도/ 울컥울컥/ 토해 낸다/

세상이/ 물난리인데/ 바람 한 점/ 없구나/

 

차들은/ 떠다니고/ 배들이/ 상륙하네/

도시는/ 간데없고/ 논밭은/ 갯벌이다/

아니야,/ 꿈꾸는 거야/ 그럴 리가/ 없잖아./

 

 

(2) [현대시조]<11여름호>

 

  계간 <현대시조>는 시중 어느 시조전문지보다 시조다운 시조를 많이 싣고 있다. 대다수의 작품은 수.장이 뚜렷한 시조형식을 갖추었고 자유시의 흉내내기를 멀리 하고 있다. [현대시조단]에 실린 88편의 신작은 약간의 파형음보가 있으나 거의 정격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은 반면 아직도 시조형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쓴 작품도 약간 눈에 뜨인다.

 

   가버린 동백에게 부침

                                               이동림

 

봄빛이 넘쳐나는 오월의 한가운데

마른 잎 달고 떠는 외로운 넋이 있다.

지금쯤 붉은 꽃송이 지천으로 뿌릴 걸

 

오롯이 고이 지닌 외사랑 깊은 순정

눈물로 잠기다가 가버린 동백꽃잎

혼백은 노을로 타서 낮달 되어 뜨겠네.

 

  완벽한 정격시조이다. 5월의 철 지난 동백을 보며 안타까운 심정을 그리고 있다.

 

 

  위대한 유산

                                  김수자

 

세기世紀의 결혼식과

세계世界의 웃음거린

 

신종어新種語 파파라치

돌림병 퍼뜨렸지

 

앞다퉈

따라하느라

팽배해진 불신증不信症

 

  정격시조이지만 한자 표기가 잘못 되어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명시조의 반열에 들지는 못하겠다. 국어는 국어기본법(제 14조)과 사회통례에 따라 표기하여야 한다. 즉 한자 또는 외국어는 괄호에 넣어 표기하여야 한다. 괄호가 없으면 한글과 한자를 모두 읽으라는 뜻이 된다.

 

   삽화

                                                                경규희

 

강줄기 따라 도는

발길은 굽이굽이

 

솟아오른/ 산봉우리에/ 눈길/ 걸어 놓고/          4524

 

산자락/ 두른 물결에/

내가/ 있다./                                                3522

 

 

   보리빵

                                                                 김태은

청보리/ 고향냄새/

모조리/ 토해 내는/

부풀은/ 구멍 마다/ 구수한/ 보리빵 냄새/

긴 오후/ 배고플 때/ 끄억끄억 과식하는/ 보리빵/            3483

                                                               (2수 중 첫째 수)

 

 

     선암사에서

                                                                        김기옥

오랜 과거와/ 오늘의 공존이/ 맑은 허공/ 다독여서/                 5644

따뜻한/ 길을 냈을/ 순천의/ 천년 고찰/

빛바랜/ 단청까지/ 해 맑은 사색으로/ 걸렸다/                        3473

                                       (3수 중 첫째 수)

 

  위 3작품은 시조형식을 크게 깨어 놓아 자유시로 분류해야 할 작품이다.

특히 [보리빵]과 [선암사에서]는 종장 둘째마디의 정형을 벗어나 시조의 생명을 잃었다. [끄억끄억]은 [과식하는]을 꾸미고. [해맑은]은 [사색으로]를 꾸미기 때문이다.

 

 

(3) [참여문학]<11여름호>

 

  계간 <참여문학>은 종합문예지로 시조는 비교적 정격을 지향하는데 이번 호에 실린 8편 중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 있다.

 

목련의 鄕愁

                                              이상인

억만년

시공 넘어

엑소더스의 북극 땅 3453

본향은

빙하에 묻혀

돌아갈 길 아득하고 3544

오늘도/

북녘 향한/

얼굴로/

불러보는/ 망향가.                           34343

 

  종장 둘째 마디 [북녘 항한/ 얼굴로]를 2행으로 나누고 종장을 5음보로 만들어 변형시조가 되었다.

 

 

 

3. 중앙시조백일장의 작품들

 

(1) 11.4월                        심사위원: 이종문·강현덕(집필 강현덕)

 

<장원>

       망월동 봄 (신준희)

 

피지 마라 꽃들아/ 날지 마라 새들아// 꽃샘바람 회오리/ 옷깃 속 파고들면//

파도로/ 무너지는 마음/ 썰물 지는/ 봄날에// 꽃 피었다 진 자리/ 깊게 박힌 못이 있어//

뿌리처럼/ 얽힌 기억은/ 다이달로스의/ 미로일까// 밀랍의 날개로 만든 꽃이여 피지 마라//

 

 

<차상>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김석인)

 

무엇이 만져질까, 내 삶을 미분하면// 응어리 너무 많아 움찔하는 양미간에//

퇴화된 꿈의 고갱이// 풍경(風磬)으로 울고 있다//

 

산벚꽃 바라보다 산벚꽃이 되는 봄날// 노루잠 눈을 뜨고 열반경 좔좔 외며//

날마다 드나들었는지// 문지방이 닳아 있다//

 

옹두리 다듬으면 무슨 빛깔 무늬 될까// 흩어진 햇살들이 실눈을 뜨는 시간//

천 년 더 공명(共鳴)할 몸짓// 잠언으로 스며든다//

 

 

<차하>

          배꽃 (화송희)

 

바람이 전하고 온 초대장 한쪽엔// 나와줄래?// 기다릴게!// 가슴 뛰는 말들만...//

흰 배꽃 날리는 그 길 나비처럼 걷고 싶다//

 

꽃향기 하염없이 머릿속을 그어대고// 배배 꼬인 지문의 길 더듬어 내려가면//

취한 듯 꿈을 꾸는 듯 흔들리는 마음아//

 

아득한 아지랑이 잡히는 듯 피어날 때// 무료함에 꼬리 무는 뻐꾸기 울음소리//

박새의 둥지에/ 탁란하는/ 환한/ 배꽃이여//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3.4조의 자리에 거의 4.3조를 접어 넣고 수의 구별이 없는 1연 6행의 자유시를 만들어 놓았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시사문제를 소재로 하여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고 그리스 신화를 끌어넣어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추상으로 일관하고 있다.

  차상작은 수.장의 구별이 뚜렷하고 비교적 정격에 가까우며 화자의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 관념을 손에 잡힐 듯이 형상화하지는 못했지만 장원작보다 낫다.

  차하작 또한 정격에 가까우며 배꽃과 뻐꾸기 울음소리를 섞어 봄의 정취를 잘 그려내고 있으나 셋째 수 종장은 3543의 정형을 크게 벗어나 시조의 자격을 잃었다.

 

 

(2) 11.5월                        심사위원: 이종문·강현덕(집필 이종문)

 

<장원>

    순천만 짱뚱어 (양해열)

1.

들긇는 갯벌 위를 눈불 켠 물뱀이 뛰다// 호미에 찍힌 손가락이 한조금 바닥에 튀다//

하현달 칼날에 잘린 뭇 혀가 하늘 날다//

2.

저것은 허파가 있고// 날개 달린// 뻘밭의 단소(短蕭)////

진창에 처박힐수록// 눈알 불거져 퍼덕퍼덕,////

입 마른// 죽창을 깨워// 검푸른 낯빛 세운다////

 

 

<차상>

      수수꽃다리, 그 여자 (곽남희)

 

사향 냄새 풍긴다고// 눈 밖에 난 젊은 새댁///

마당가 수수꽃다리// 눈물 한 줌 받아먹고///

사월을 다 집어 삼킨// 뜨락이 아찔하다///

 

 

<차하>

           책 속의 길 (장옥경)

 

가파른 골목길을 더듬더듬 걸어가는// 실개천을 건너서 엉겅퀴 숲을 지나//

낙뢰의 서늘한 불기둥// 만나기도 하는 곳//

 

백옥의 흰 살결 날카롭게 각진 서슬// 잘 벼린 칼 끝에 상처가 나기도 하지만//

온전히 자신을 바쳐// 순금의 밭 일군다//

 

연꽃의 미소처럼 정갈한 발자국// 두터운 침묵 속에 내리치는 죽비소리//

가슴속 둥근 파문되어// 음표로 튀어 오르고//

 

때로는 가슴 아픈 사랑을 노래하고// 칠흑 같은 밤바다 깜박이는 불빛 되어//

화들짝 깨어 일어난다// 볓꽃 되어 박힌다//

 

 

* 필자의 작품평

 

  3편 모두 수.장의 경계가 명확하고 내용상 의미 전달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깨진 음보가 많아 시조의 기본 보법인 3.4조를 찾기 어렵고 정격시조와는 거리가 멀다.

  장원작은 표현기법이 서로 다른 2편의 시를 한데 모아 놓은 구조를 취하고 있다. 1.은 동사의 원형으로, 2.는 현재형으로 풀어내었다. 굳이 필법을 달리하여 한 편에 묶어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차상작은 수수꽃다리를 젊은 새댁에 비유한 상상력이 돋보이지만 파형시조이다.

  차하작은 책을 읽으면서 부딪치는 여러 가지 심상을 잘 묘사하고 있으나 넷째 수 종장에서 [볓꽃]이라는 알 수 없는 시어를 사용함으로써 작품 전체의 생명력을 크게 떨어트리고 있다.

 

 

 

(3) 11.6월                             심사위원: 이종문·강현덕(집필 이종문)

 

<장원>

         미니슈퍼 김씨 (김지선)

 

C상가 끄트머리 미니슈퍼 주인 김씨는// 막걸리 달빛 띄워 가슴으로 들이켜고//

다 못 쓴 일기 한 장씩 새벽별에 걸어둔다//

 

마누라 손맛 담긴 바지락 국 한 그릇은// 몇 년 전 떠나버린 신기루와 같은 기억//

명치 끝 박힌 우물에 삼킨 말이 고인다//

 

매일 밤 잠들지 않는 한 집 건너 편의점엔// 출입문 달린 방울 제 목청껏 울어대는가//

홀로 선 가게 마루에 먼지 쌓인 몽타주뿐//

 

귀 떨어진 소파 위로 노루잠을 흩어놓고// 새벽의 가장자리를 멍석처럼 말고 있다//

너절한 옷깃 사이로 안개구름 퍼진다//

 

 

<차상>

     아버지의 솟대 (최세희)

 

짭조름 울음 먹여 흥건히 젖은 솟대// 부황기 깊어져도 한 자리만 지킨 고집//

그리움 오롯이 빚어 북녘 향해 앉았나//

 

비 오면 지우산 씌워 자늑자늑 보듬어도// 부리마저 뭉그러져 울지도 못하던 새//

적십자 한 통 전화에 퍼드득, 날개쳤다//

 

“이 시계 큰아버지래 주셨지 않았습니까”// 학도병 끌려갈 때 채워준 그 시계 아닌가//

아우를 똑 닮은 조카 첫 만남도 낯이 익다//

 

노을빛 타고 뼈마디로 스며드는 아우 온기// 아른아른 멀어진 조카 꿈속에도 눈에 밟혀//

60년 멈춰진 시계 느적느적 숨을 쉰다//

 

 

<차하>

        목련꽃 지다 (이행숙)

 

한 때는 부풀었을 어머니 애련한 꿈// 보슬비 한 자락에 떨어져 바래지던//

허망한 젊은 날들이 백골되어 누웠다.//

 

더러는 짓밟히어 곤죽이 되더라도// 달달한 살 냄새가 그리워진 이 4월에//

당신의 하늘 언저리 또 시작된 기다림.//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과 차상작은 깨진 음보가 많은 파형시조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시어를 낭비하고 장황하게 상황전개를 하고 있지만 가슴을 때리는 감동이 없다.

이에 비하여 차하작은 1음보도 빗나감이 없는 깔끔한 정격시조이다. 그 뿐만 아니라 한마디의 시어도 낭비가 없다. 어머니의 젊은 날의 꿈을 비에 젖어 떨어진 목련꽃으로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즉 꿈이라는 관념을 목련꽃이라는 실념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 목련꽃이 짓밟혀 볼품없어도 어머니의 살 냄새를 그리며 다시 한 해를 기다리게 한다. 시조의 형식과 내용 어느 면으로 보나 작품성이 장원작 또는 차상작보다 낫다.

 

 

 

(4) 11.7월                            심사위원: 오승철·오종문(집필 오승철)

 

<장원>

      꽃잎 밀어-화전을 지지며 (이형남)

 

숨 고른 날반죽에 생생한 지문들이// 서각의 추사체로 그리움을 찾아간다//

찔레꽃 다소곳하게// 말을 거는 말간 시간//

 

물안개 아니리가 자르르 흐르는 듯// 묵언의 마음 하나 둥글게 펼 때마다//

명치끝 오목가슴이// 뜨겁게 아려온다.//

 

아침놀 발치에서 붉어진 빛의 선율.// 사랑이 익어가는 그 소리 지지지지//

떡꽃의 진한 향기가// 문인화로 앉았다.//

 

 

<차상>

           물의 뿌리 (엄미영)

 

내가 온통 휘어지다 튕기는 여울목에서// 돌의 어깨 감싸고 조용히 흐느끼려 할 때//

한 구절 혀의 문장으로// 너에게 도착한다//

 

처음도 끝도 없이, 돌밭 위를 핥는다// 물 주름 겹쳐가며 물소리가 읽히고//

돌돌돌 깎인 물결이// 흘림체로 흐른다//

 

어디쯤 마침표로 또 나를 멈추게 할지//먼저 알고 달려온 산자락 짙은 그늘을//

천천히// 에돌아가며// 물의 뿌리 내려본다//

 

 

<차하>

           동행-49일 (김영순)

 

저 들녘 봐요, 아버지// 금가락지빛 보리밭// 노릿노릿 자리돔도 함께 익는 저물녘//

허기진 들녘밥상에 별빛들이 모이겠다//

 

알아요, 병중에도 눕지 않으려던 그 고집// 열두 개 문전마다 조아리며 바친 뇌물//

가끔은 어머니 몰래 건네던 술값 같다//

 

잘 갈게요, 파싹!// 항아리 깨듯 그렇게// 사십구재 목탁소리 고향 가는 그 길목//

비로소 연화대 속에 들어앉는 아버지//

 

 

* 필자의 작품평

 

  장원작은 비교적으로 정격에 가까우나 약간의 깨진 음보가 있다. 화전을 지지며 꽃잎과 대화를 나눈다. 그러나 [추사체로 그리움을 찾아간다] [물안개 아니리(필자 주: 아니리=창 중에서 엮는 사설)] [묵언의 마음 하나 둥글게 펼 때마다] [빛의 선율] [문인화로 앉았다] 등 추상적인 표현들은 제목인 ‘꽃잎 밀어’를 형상화하여 드러내기는커녕 도리어 알 수 없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 시를 다 읽어도 꽃잎이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가 없다.

  차상작은 3.4조의 시조리듬은 거의 없고 깨진 음보가 많아 정격시조에서 거리가 멀다. [물의 뿌리]라는 추상적인 관념을 제목으로 내세워 [여울목] [돌밭] [산자락] 등 형상들을 오히려 관념화의 도구로 삼고 있다.

  차하작 또한 3.4조의 시조라기보다 자유시의 리듬에 흠뻑 빠져 있다. 둘째 수 중장 [열두 개 문전마다 조아리며 바친 뇌물]과 셋째 수 초장 [잘 갈게요. 파싹! 항아리 깨듯 그렇게]는 난데없이 굴러 온 병 조각 같이 작품의 감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끝)

 

 

 

             * 현대시조 2011 가을호에 게재

 

 

 

출처 : 당신이라는 나
글쓴이 : 여미(麗尾)박인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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