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수필-
내가 만난 혁명가
시바타 시요(紫)田 翔/작가)
黃 晋 燮(수필가, 번역가)옮김
몇 개월 전 신문에, 앙고라의 반정부 세력인 UNITA 의장이 전투에서 사망했다는 기사가 났다. 사망자의 연령은 67세. 내 나이와 같다.
「내가 만난 혁명가」라고 하지만, 그 의장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앙고라라고 하는 지명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약40년 전, 60년대 초에 유학하고 있던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학생 기숙사 에서였다.
같은 5층의 이웃 방에 앙고라에서 온 유학생이 있었다. 칠흑(漆黑)이라고 하면 좋을까. 반짝이는 듯 진하게 새까만 피부를 가진 덩치가 큰 사내였다.
패전국이었던 일본에서 자란 나는 앙고라라는 나라가 아프리카의 어디쯤에 있는지, 또 어느 나라의 식민지 인지도 몰랐다. 가까이에서 흑인을 본 것도 처음 경험이었다.
쳐다보듯 하는 큰 체구와 짙게 검은 피부, 들어나게 빨갛고 두꺼운 입술, 그리고 목으로 기어들어갈 듯이 신음하는 소리로 독일어를 말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 대면하는 나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다.
막 잠이 들었을 때에 거대한 흑인이 나의 방 입구에서 다리를 벌리고 가로막아 서 있는 꿈을 꾸었다. 선잠에서 깨어나 보니 그것은 벽에 걸어둔 검고 두꺼운 겨울용 오버 코트였다.
언젠가 동생이 그를 찾아왔다. 몸집이 작고 갸름한 얼굴을 한 청년의 피부 색깔은, 갈색을 띈 백색으로 나에게는 남 유럽계의 백인으로 보였다.
“네 동생은 아버지가 다르냐?” 동생이 가고 난 다음, 공용으로 쓰고 있는 주방 겸 식당에서 만난 그에게 젊은 학생들 끼리 조심성도 없이 물어보았다.
그 무렵 나도 앙고라가 포르트갈의 식민지라는 것을 막연히 알고 있었다.
“아니 왜 묻지?” 그는 굵고 활기찬 소리로 되묻고는 나의 얼굴을 보았다.
“형제라도 피부색이 전연 달라서 말이야, 그런 경우가 자주 있나?”
내가 거듭해서 묻자,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있지! 같은 양친이라도 조상의 유전이 때때로 여기저기 나타난단 말이야.”
그때, 크게 웃어넘긴 덩치 큰 그의 표정에는 무엇인가 미묘한 것이 있었다.
쑥스러운 일을 어물쩍 넘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 비슷한 그 무엇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대에 대한 우월감이면서, 그 우월감으로 자기 속의 무엇인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는 듯한 낌새.....
그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지금도 나는 모른다.
그것은 조상에 백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복잡한 감정이었던가.
어떻든 크게 웃었을 때의 그가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그 표정만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기억이란 이상한 것이다.
같은 층에 나란히 있는 여섯 개의 방에 남학생 여섯 사람, 그 아래층에 여학생 여섯 사람, 그 열두 사람이 주방 겸 식당을 같이 쓰고 있어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름의 태반은 기억에서 멀어졌지만 그들 젊디젊은 풍모, 표정, 떠드는 모습, 감정의 음영(陰影)은 같이 생활했던 게 바로 요 얼마 전 일이었던 것 같이 되살아난다.
그에게는 언제나 주말이면 찾아오는 독일 아가시가 있었다.
야위고 키가 큰 19세의 고등학생으로 활기찬 그에게 어울리지 않게, 기숙사에서 우리들을 만나도 좀처럼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원래 붙임성이 없는 성격이었던지, 아니면 당시 독일에서 흑인 애인을 찾아오는 것에 그 나름으로 긴장감이 있었던 것인가.
그녀는 방문해 와서 주방 겸 식당에서 간단한 저녁식사를 준비하여 두 사람이 먹고는 방에 틀어박혀 묵고 가는데, 이튿날 아침이 되면 정나미 떨어지는 표정인체 목에 빨갛고 거무스름한 키스마크를 보이고 나왔다.
그녀가 와 있을 때에, 같은 흑인과 백인의 커플이 방문해 온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막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며, 백인 여성의 피부는 빨갛게 햇볕에 그을려 거의 화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는 그 상대 흑인 남성과 주방을 겸한 식당의 한쪽 구석에서 무엇인가 심각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 달이 훨씬 지나 오랜만에 돌아온 그는 주방 식당에 앉아 그때 마침 자리를 함께 하게 된 친구들에게 동 유럽에 잠간 다녀왔다고 설명했다.
무엇 때문에 하필이면 동 유럽이었던지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나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흘렀다.
“저 녀석 자금 조달 때문에 동유럽을 돌아다니다 왔대.” 나중에 모두에게 그렇게 알려준 것은 역시 같은 층에 있는 독일인 학생이었다.
그는 학생좌파조직SDS의 중심적인 활동가였다.
“저 녀석은 앙고라에는 돌아갈 수 없지. 간다면 포르트갈 경찰에 채포된다.”
앙고라가 포르트갈의 식민지라는 것조차 막연하게 밖에 이해하고 있지 않았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앙고라에 반 포르트갈 저항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유럽이 사회주의권으로, 세계 각지의 반식민지 운동을 지원하고 있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갔다. 1975년에 앙고라는 포르트갈로부터 독립 되었으나 그 전후에 내전이 시작 되었다. 이 내전은 수렁과 같이 헤어나기 어려운 전쟁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소련파인 MPLA와 서 유럽파인 UNITA와의 사이에 과격한 알력이나, 다이아몬드 이권과 같은 이야기를 나는 일본 신문에서 알았다.
먼 나라의 먼 공방(攻防)을 읽으면서 나는 이따금 막연히 옛날에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던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소련파인 MPLA가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에, 젊을 때부터 동유럽 제국과 접촉하고 있던 그가 정부요인이 되어있어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월은 인간의 입지도 변하게 하고, 운명도 바꾸어 놓는다.
사회주의권도 벌써 자취를 감추었다.
UNITA의장의 사망을 전하는 신문에 따르면,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의 죽음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내전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때의 프랑크푸르트 기숙사 생활 이래, 나는 상당히 긴 시간을 살아왔다고 느끼는데, 그 젊은 흑인 혁명가는 그와 똑 같은 긴 세월, 어떤 처지에서 살아왔으며, 날마다 어떻게 지내왔는지, 지금은 어느 곳에 살아 있을까. 혹시 그 중간에 죽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지만.
그리고 또 그 붙임성 없는 고교생 애인은 활기찬 그와 사귀면서 같이 앙고라에 갔을까. 그렇지 않으면 독일 어느 도시에서 나와 같이 신문으로 머나먼 앙고라의 기사를 읽고 먼 옛날의 연인을 추억이라도 하고 있을까.
사망기사 옆에는 죽은 UNITA의장의 사진도 실려 있다. 그것은 물론 그 젊은 혁명가의 사진은 아니다. 하지만 의장도 그도 같은 나이또래의 60년대, 두 사람은 그리 다른 장소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의 배후에 각별히 친하지도 않았던 젊은 흑인의 모습을 무심코 찾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 의장에게도 모두 같이 지나온 40년이라는 시간에 쌓아온 각각의 내실을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うらやましい人‘03.’12.7.23번역)
'문학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우슈비츠의 그림자 (0) | 2013.11.21 |
---|---|
[남덕현의 귀촌일기] 배추가 뭐길래 (0) | 2013.11.21 |
[스크랩] 수필을 어떻게 쓸까(김학) (0) | 2013.07.02 |
[스크랩] 수필을 어떻게 쓸까(김학) (0) | 2013.07.02 |
[스크랩] 수필 어떻게 쓸까/정목일 (0) | 2013.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