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 시모음> 손남주의 '목련' 외
+ 목련
시절이야 어떻던
담장 너머 가득 목련은 피어났다
대문 활짝 열어놓고, 환히 웃고 선
목련꽃 바라보며,
탕아는 당신의 뜰에서
참회로 울고 싶다.
남정네 투박한 영혼,
여로 지친 육신들
안식의 품으로 다스려 거두는가,
목련의 뜰.
훤칠한 키에
울안에서도 바깥 세상 궂은일, 갠일
속으로 다 가늠하고,
어려운 한세상 뿌리로 버티며
한 올 구김살도 없이 환한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여인 같은 꽃이여!
누구나를 다 좋아하고
누구나가 다 좋아하는
너그러운 눈빛,
우아한 자태에 기품은 감돌아,
흰색을 사랑하여 순결하고
자줏빛 짙어 고매한 사랑.
내 마음의 울안에
한 그루 목련 심어
한평생 당신의 주인이요, 종이
되고자.......
(손남주·시인, 경북 예천 출생)
+ 목련
입안에
함빡 봄을 머금고 와서
푸우~ 푸우~
뱉고 있다.
봄이
화르르 쏟아진다.
(오순택·아동문학가, 1942-)
+ 꽃밭에서
목련꽃이 흰 붕대를 풀고 있다
나비 떼가 문병 오고
간호원처럼 영희가 들여다보고 있다
-- 해가 세발자전거를 타는
삼월 한낮.
(손동연·아동문학가, 1955-)
+ 이모 아니면 고모
땅에 떨어진
목련꽃이 더럽다고
흉보지 마세요
예쁘게 피었다가
더럽게 지는 꽃이나
맛있는 밥 먹고
더러운 똥을 싸는
사람이나
다를 게 없잖아요
(신천희·승려 시인)
+ 개화의 의미
목련이 일찍 피는 까닭은
세상을 몰랐기에
때묻지 않은 청순한 얼굴을 드러내 보임이요
목련이 쉬 지는 까닭은
절망했기 때문이요
봄에 다시 피는 까닭은
혹시나 하는 소망 때문입니다.
(김상현·시인, 1947-)
+ 백목련
청명이 지나고 일요일 아침
앞 산자락에 하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하늘과 땅 중간에 피었습니다.
유리창 너머로 문득 산을 바라보니
목련꽃은 간데 없고
그 자리에 하얀 뭉게구름만 떠 있습니다.
생이 얼마나 허무했으면
시든 꽃잎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저렇게 흰 목련구름이 되어
하늘과 땅 사이에 둥둥 떠 있을까요.
(이재봉·시인, 1945-)
+ 목련
징하다, 목련 만개한 것 바라보는 일
이 세상에 와서 여자들과 나눈 사랑이라는 것 중에
두근거리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었으니
두 눈이 퉁퉁 부은
애인은 울지 말아라
절반쯤은, 우리 가진 것 절반쯤은 열어놓고
우리는 여기 머무를 일이다
흐득흐득 세월은 가는 것이니
(안도현·시인, 1961-)
+ 목련
내 어릴 적
어머니
분 냄새난다
고운 입술은
항상
말이 없으시고도
눈과 눈을
마주치면
애련히
미소지으시던
빛나는 치아와
곱게 빗어 올린
윤나는 머릿결이,
세월이
너무 흘러
무정하게도
어머니 머리에는
눈꽃이 수북히
피어났어도
추운 겨울 지나고
봄볕 내리는
뜨락에
젖빛으로
피어 앉은 네
모습에선
언제나
하얀
분 냄새난다
(홍수희·시인)
+ 木蓮花
목련나무 아래
딸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목련꽃을 한 송이 따 달라던
딸아이가
막 떨어진 목련 한 송이를 주워서
"아, 향기가 참 좋다"며
국물을 마시듯 코를 들이대고 있다가
"아빠도 한 번 맡아 봐" 하고 내민다
나는
손톱깎이 같은 바람이 뚝뚝 끊어먹은
우리들의 꿈 같은
하얀 그 꽃잎을 받아
나뭇가지 위에 올려놓는다
쉽게 꺾이지만 다시 피어나는
희망처럼
(최창섭·시인)
+ 겨울을 난 목련꽃들
목련의 하얀 꽃눈이다
둥그레 뭉쳐진 꽃눈이다
시리게 고운 시리게 고운 꽃눈이다
추위에 얼지 않고 견뎌내어
고마운 갈색 껍질 벗어내어
이른 봄 맞이하는
이른 봄 맞이하는 꽃눈이다
부시게 고운 꽃눈이다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랑 받을 수 있고 사랑 줄 수 있는
꽃으로 피어나라
지구가 부시게 피어나라
(이윤정·시인, 1960-)
+ 목련
언제 모여들었을까
나무 가지에 하얀 새떼가 둥지를 틀었다.
향기로운 지절거림으로 먹먹해진 귀
바라보기만 해도 풍성한 둥지엔
햇살로 벙싯 살이 오져 가는 흰 날갯죽지가 눈부시고
갑자기 바람난 4월 봄비에
후두둑 날아오른 하얀 새떼의 비상,
빈 둥지에는
푸른 깃털이 잔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했다.
(김지나·시인, 전북 전주 출생)
+ 목련꽃
지난해 가지치기한
목련을 보았네
목련 봉긋한 가슴들이
망울망울 맺히고 있었네
홀로 힘겹게
홀로 피었네
텅 빈 가지에서
아픔이 하얗게 피는 줄
모르고 있었네
고개를 떨구고
땅만 바라보고 있는 줄만
알고 있었네
봄이 이렇게
아프게 오고 있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네
내 모습 부끄러워
땅만 보았네
(김귀녀·시인, 강원도 양양 출생)
+ 하늘궁전
목련화가 하늘궁전을 지어놓았다
궁전에는 낮밤 음악이 냇물처럼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생사 없이 돌옷을 입고 평화롭다
목련화가 사흘째 피어 있다
봄은 다시 돌아왔지만 꽃은 더 나이도 들지 않고 피어 있다
눈썹만한 높이로 궁전이 떠 있다
이 궁전에는 수문장이 없고 누구나 오가는 데 자유롭다
어릴 적 돌나물을 무쳐 먹던 늦은 저녁밥 때에는
앞마당 가득 한 사발 하얀 고봉밥으로 환한 목련나무에게 가고 싶었다
목련화 하늘궁전에 가 이레쯤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문태준·시인, 1970-)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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