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좋은 시(詩)

[스크랩] 은포에서의 2주일 - 강은교

운산 최의상 2011. 9. 2. 19:16
강은교(시인. 동아대 교수)

 

  은포에서의 2주일 

서울에는 잘 올라가셨는지요? 뚝뚝 땀이 흐르시던 모양이 자꾸 떠올라 영 걱정됩니다. 수술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면서…. 오늘 새벽에도 매미 소리를 들으러 차 한 잔을 들고 나의 ‘은포’로 갔지요. 차를 따라 마시며 매미소리·새소리를 듣고 앉았자니 선생님이 ‘은포’가 무엇이냐고, 무슨 뜻이냐고 물으시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무엇이라고 대답할지 몰라-막상 말하려고 보니 좀 우습기도 했고-그래서 비밀이라고 하고 말았습니다. 하긴 비밀입니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비밀이, 남에게 다 말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지요? 그렇지만 그 비밀 중 한 가지는 알려드렸어야 하는데…. 뒤늦게 후회하였습니다. 종이 쪽지에 쓰여 살짝 거기 붙어 있는 은포는 ‘은혜의 포구’, 나아가 ‘은교의 포구’의 준말이지요.

아무튼 학교에 갔다가도 집에 오면 거기부터 먼저 간답니다. 나의 ‘항해’를 잠시 쉬며 반성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매미의 ‘지상에서의 2주일’처럼 나의 이 ‘지상에서의 2주일’을…. 아닙니다. 그냥 ‘멍하니’ 있지요. 차를 다 마시고는 꽃들에게 분무를 하다 줄기 끝을 자르지 않았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집 안에 있는 화병들을 다 모아 싱크대 위에 놓았습니다.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화병에 조금씩 갈라 담았습니다. 꽃가지를 씻어주고, 꽃송이를 샤워시킨 다음 줄기 끝을 조금씩 자르고 얼음물에 다시 꽂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해가 아주 높이 떠올랐는지, 은포에 앉아도 새소리는 들리지 않는군요.

‘2주 천하의 왕자들’인 매미소리만 들립니다. 컴퓨터 앞에 가 앉습니다. “2시간마다 꼭 이 인공눈물을 넣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꼭 쉬십시오” 하며 손을 내흔들던 의사의 얼굴이 떠올라 컴퓨터를 얼른 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병명은 만성결막염증 및 안구건조증.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자판 두드리는 속도가 아직도 늦군요. 눈이 또 어른거리기 시작합니다. 안경의 렌즈를 닦습니다.

“참 좋은데…아마 ‘2% 부족’인가봐”

그러다 퍼뜩 깨닫습니다. ‘아~ 잠깐 쉬어야겠구나. 인공 눈물을 넣을 때로구나.’ 시계를 보니 내 병든 안구는 참 정확하기도 하군요. 2시간이 지났군요. 일어서서 다시 부엌으로 갑니다. 다시 차 한 잔을 들고 은포로 갑니다. 매미소리를 들으며 앉습니다. 참 열심히도 우는군요. 하긴 7년이나 땅 속에 갇혀 있었으니, 2주일의 말미를 얻고 지상에 올라왔으니…. 나는 퍼뜩 깨닫습니다. 아, 그렇다. 간절성이다. 간절성이 없었구나.

무슨 이야기냐고요? 저의 시 이야기입니다. 사실은 어제 선생님이 가신 후 컴퓨터를 켜고 버릇처럼 저의 홈페이지를 열어 보았지요. 또 버릇처럼 시를 ‘클릭’하고요. 역시 새로 올린 <선풍기의 연서>와 <백조 커피숍>에는 아무도 ‘추천’을 붙이지 않았어요. 마침 그때 들어온 딸이 옆에 와 앉았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안 붙었어…. 네가 좋다고 했잖니? 이미지가 아주 괜찮다고….”
“글쎄, 참 좋은데…. 아마도 ‘2% 부족’인가봐. 아니 1%…. 호호.”

‘정신 치유’, 그걸 시가 해줄 수 있구나

딸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딸도 ‘컴퓨터 그래픽’을 하고 대학 강사를 하는 선생인 통에, 분야는 다르지만 우리는 이미지라든가 뭐 그런 것에 대해 평소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최근에는 제 시의 모니터링을 딸이 꼭 해주고 있죠.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저는 시 하나가 되면 느닷없이 딸을 불러 “객관화돼야 하거든. 나 혼자 중얼거리는 게 되면 안 되잖니? 자 읽어봐” 그래서 딸이 합격 점수를 주어야만 발표하고는 하죠.

그러니까 요즘 저의 시의 1차 필터는 연필로 써보는 것(컴퓨터 때문에 잃어버린 말의 긴장도를 시험하는 데 최고인 것 같습니다), 2차 필터는 딸의 모니터링, 3차 필터는 홈페이지거든요. 딸과 의논하다 그 시들을 일단 ‘삭제’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간절성이야. 간절. 시를 쓰려는 학생들에게 그렇게 떠들면서도 정작 나는 이제 잃어버렸군. 어쩌면 좋아? 그래도 시랍시고 자꾸 쓰고 있으니….”
아, 정말 미안합니다. 자꾸 시랍시고 쓰고, 글이랍시고 써서…. 이제 나는 정말 ‘시 교사’만 해야 하는데…. 사실은 제가 ‘시 바다’라는 것을 하는 것은 이런 절망 속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자에게 시 멋있게 읽어주기’를 하다 보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정신의 치유’구나, 그걸 시가 해줄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어 ‘시 치료’를 하게 되었고, 급기야 이윤택 씨의 연희극단과 연대하게 된 것이었고, 그 연대를 위해 원래 낭송 모임을 하던 부산을 떠나 이윤택 씨의 연희극단과 극장이 두 개나 있는 밀양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계절에 한 번씩 할 때마다 연희극단은 시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객관화’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어느새 아침도 다 지나가고 있군요. 또 인공눈물을 넣어야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글 같지 않은 글로 선생님을 괴롭혀 드려 죄송합니다. 글 같은 글, 시 같은 시를 한 번은 써 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연습이었다고 치고 말입니다. 아니, 연습 인생이란 없다고요? 지금까지 한 것, 누가 책임질 거냐고요? 아니! 또 떠들려고 합니다. 변명하려고 하네요. 얼른 입을 막아야겠습니다.

아, 언제 저 매미처럼 울 수 있을까? 매미의 유언인 저 매미의 울음. 언제 늘 ‘마지막’ 같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안녕히….
                                       <출처  네이버>

출처 : 이천문인협회
글쓴이 : 봄빛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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