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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 전설> 원 순제 귀향살이

운산 최의상 2018. 2. 20. 19:08




<대청도의 전설>

                                                           최의상

 

원 순제의 대청도 귀양살이

 

 

  원 순제의 대청도 귀양살이 이야기는 인근의 여러 섬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만큼 유명한 전설로서의 주민들은 이를 가르쳐 신행이 얘기라고 한다. 원나라 시절 이야기다.

 

 

 순제가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순제에게는 일찍이 계모가 있었는데, 그 계모의 몸에선 왕자가 하나 태어났다. 순제는 비록 이복동생일망정 이 계모의 아들을 극히 귀여워 해주었건만 계모의 눈치는 나날이 달라져만 갔다.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기가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혀 보려는 엄청난 음모가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자인 순제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현실에서 실현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어 계모는 번민의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는 가만히 않아 있을 여자가 아니었다. 순제의 그릇된 행동을 조작 밀고하여 그로 하여금 절해고도인 대청도로 유배를 보내는 묘안을 생각해 내어 마침내는 성공에 이르렀다. 그러나 죄를 진 놈은 다리를 못 펴고 잔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인 것이다. 비록 절해고도로 내쫓기는 했으나 혹시 훗날이라도 복수나 하지 않을까 싶어 간사한 계모의 마음은 하루도 편치 못했다.   

  이 때 자기 밑에서 심부름하고 있는 계집 앵무(鸚鵡)를 시켜 몰래 대청도에 가서 순제의 생활상태를 은밀히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명을 받은 앵무가 대청도에 이르러 보니 삼림이 울창하여 하늘을 가리고 양 계곡사이로는 향기를 자랑하는 해당화가 수북하게 피어있어 그대로 선경을 이루고 깊숙히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니 높다랗게 집을 짓고 같이 귀양온 부인과 그 밑에 따라온 종들을 데리고 단란하게 사는 품이 꼭 별천지의 모습이었다.

  비록 영원히 고국을 등진 외로움에 젖어 눈물짓는 광경이 애처로운 바도 있지만 인간이 인간을 믿고 이해하고 아끼며 살아가는 모습이란 지상천국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화기한 분위기에 정신이 나간 앵무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자기가 본대로 황후에게 아뢰었다. 놀란 것은 황후였다. 당황하여 정신을 못 차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순제를 없애버릴 계획을 꾸미기를 잊지 않았다. 황후의 밀사가 다녀간지도 모르고 단란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순제는 뜻밖에 얼마 후에 편지를 받았다. 부왕의 편지였다.

  "잘못이 있어 내가 너를 멀리 떠나보냈으나 부자의 정을 어이 저버릴 수가 있겠느냐? 보고 싶은 마음 금할 길 없어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중 이제 급한 병을 얻어 죽음이 눈앞에 있다.  명의란 명의를 다 불렀으나 도리가 없다는구나 다만 하가지 신효한 약이 있기는 하다는데 이 신약이란 다른 약이 아니고 태자의 눈알을 하나 먹는 것이라 하니 이로서 천년을 산다 한들 어찌 내가 너의 눈을 멀게 할 수 있겠느냐? 애비는 너를 한 번 못 본체 속절없이 죽게 되었구나. 늙은 몸이 이제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으랴마는 멀리 나라를 떠나보낸 너를 생각할 때 눈이 감길 것 같지가 않구나."

  이와 같은 부왕의 글을 읽고 난 순제의 두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비록 계모의 음모를 깨닫지 못하고 나를 이곳에 귀향 보낸 부왕이지만 나에게는 둘도 없는 아버지가 아니냐? 이제 생사가 경각에 있다하니 내 어이 한 눈을 아껴 부왕의 생명을 건지지 못하는 천고의 불효를 끼칠까보냐? 그에게는 조금의 주저도 있을 수 없었다. 한쪽 눈을 빼어 나라에 보낸 순제는 부왕의 완치만을 빌며 다시 전대로의 단란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불구의 슬픔 위에는 더한층 깊은 인정이 오고가는 것이다. 순제의 한 쪽 눈을 받은 황후는 기쁨을 참지 못하는 한편 필연코 순제가 비관 자살이라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사람은 보내어 가끔 소식을 알아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계속되는 순제의 단란한 생활에 더욱 겁이난 황후는 다시 편지 한 장을 썼다. "너의 눈을 하나 먹었더니 약간의 차도가 있어 기쁘나 마저 하나를 더 먹어야 완쾌되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곧 순제에게 전해졌다. 본래 순제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부왕을 위하여는 남은 한 쪽 눈마저 안줄 수 없었다. 계모의 음모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순제는 기어코 두 눈을 다 빼내고야 말았다. 두 눈을 잃은 순제는 그야말로 앞이 캄캄하였다.

  답답한 심정을 억제할 길 없어서 정처없이 길을 떠난 것이 해주 수양산 고주봉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기진맥진한 순제는 바위에 엎드려 앞에 있는 큰 미륵을 어루만지며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 속에서 미륵이 말을 걸었다. "나는 밤낮없이 이 곳에 서서 모진 비와 억센 바람에 영 견디어낼 수가 없어 힘들어 죽겠다. 그러니 네가 나를 위하여 집을 지어 준다면 내 너로 하여금 大國天子에게 보내어 왕위를 잇도록 해 줄 것이니 그리 알아라" 꿈속에서 깨어난 순제는 꿈속의 일을 생각하고 이상히 여겨 미륵을 위한 집을 짓고 싶으나 앞을 못 보는 몸이 다른 도리가 없어 한숨을 짓고 있는데 문득 강풍이 일어 순제를 태워 中國으로 싣고 갔다.

  그리하여 순제는 그 곳에서 집 지을 재목 일체를 말려 가지고 해주(海州)에 돌아와 미륵이 선 자리에 큰집을 지으니 이것이 유명한 신광사(神光寺)이다.

  그 후 순제는 미륵의 힘을 입어 드디어는 大國天子의 자리를 차지하였음은 물론이다. 이 원 순제의 전설은 무대가 꽤나 넚다. 大靑島에는 지금도 元 순제가 궁궐을 짓고 살았다는 곳이 동명(洞名)도 현 대청초등학교 터였다고 하며 고주동은 그가 창고를 지어 곡식을 쌓아 두었었다는 곳인 바 동명(洞名)도 여기에서 유래되어 본래 고사동(庫舍洞)이었는데 이제 개명하여 고주동(庫柱洞)으로 부른다.

  이들 섬이 한때는 무인도가 되어 나라에서 유배지로 정하였다 함은 사실이며 오늘날 이 섬에서 정착한 주민으로 가장 오래된 내력도 물어보면 모두가 조상이 귀양살이 와서 살게 되므로써 이 섬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우리나라에서만 유배를 보내던 곳이 아니라 원나라에서도 대청도가 유배지로 되어 많은 황제의 근친족들과 태자까지 유배를 왔던 섬이다. 이와같은 기록은《고려사》를 비롯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등 고문헌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