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권영미 기자 입력 2017.10.12. 08:01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호명'(呼名)당하는 작가가 있다.
10여년 전부터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면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고은 시인(84)은 올해도 고배를 마셨다.
고은 시인은 1958년 등단한 이래 60년 가까이 문단에 산맥처럼 존재하며 시, 소설, 평론 등의 저서를 150권 이상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고은 시인은 젊은날에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10년간 승려의 삶을 살기도 하며 탐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를 썼다.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다."(대담집 '고은 깊은 곳' 22쪽)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호명'(呼名)당하는 작가가 있다. 10여년 전부터 매년 가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명되면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고은 시인(84)은 올해도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여느 해와 다른 것은 "언론과 독자들의 지나친 관심이 문제"라면서 "이제는 고은 시인을 놓아주자"는 목소리가 들리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고은 시인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출간된 고은 시인과 김형수 시인의 대담집 '고은 깊은 곳'(아시아)는 한국의 대표시인이라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잘 몰랐던 고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고은 시인은 1958년 등단한 이래 60년 가까이 문단에 산맥처럼 존재하며 시, 소설, 평론 등의 저서를 150권 이상 세상에 내놓았다. 하지만 고은 시인은 젊은날에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10년간 승려의 삶을 살기도 하며 탐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시를 썼다.
그렇게 문학의 꿈을 지켜온 그는 1970년대 사회와 역사에 눈을 뜨며 약자들의 삶을 기록하고 폭력에 저항하는 시들을 썼고, 그 후 더 나아가 '순수'와 '참여'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하는 폭넓고 깊이 있는 시를 쓰는 시인으로 발전했다.
'고은 깊은 곳'에선 천황폐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고은의 어린시절,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고, 출가했다가 다시 환속한 청년 시절 등 굴곡 많은 인생과 당시 시인이 느꼈던 마음이 다 나온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 퇴학당한 이유에 대해서는 “천황폐하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났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장의 불벼락이 떨어졌네. '네놈은 당장 퇴학이다'하고 나를 쫓아냈어. 나는 엉엉 울면서 책보를 싸 어깨에 메고 논길을 걸어 집으로 쫓겨 갔네." (36쪽)
또 출가한 이유에 대해서는 “불교는 내가 선택한 기억이 없네”라며 "고향의 전후, 그 참혹한 학살을 경험한 뒤의 자생된 허무 속에서 가출을 거듭하다가 길에서 우연히 편력승을 만나 그의 뒤를 따라감으로써 불교를 만난 것"(36쪽)이라고 말한다.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사회주의자의 아들이라고 생매장당한 동네 친구의 모습,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전쟁통의 수많은 주검과 죽음의 악취의 경험이 허무주의를 시인의 마음 속에 심었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나는 동네 친구 김봉태를 잊을 수 없네. 그는 부유층 사회주의자의 아들이었다가 우익에 의해 생매장 당했네. 나는 그를 살려낼 힘이 없었어.”
"6.25는 '죽음이 얼마나 삶을 모독하는가를 죽음이 얼마나 삶 따위를 가소롭게 하는가를 소년인 나는 아무런 정신이나 의식의 단련 없이 체험'하게 해주었다."
"내 유골도 시를 쓸 것"이라면서 시인은 자신에게 시가 갖는 의미와, 문학이 잘 읽히지 않는 시대에도 변함없이 품고 있는 시에 대한 '희망'을 이같이 말했다. “나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나는 사람들이 시를 모를 때도 시를 지켜낼 것이네. 시의 시대가 올 것이네. 인류사의 종말에는 시만 남을 것이네."
ungaungae@
'문학 > 작가와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석 시집 사슴을 구하고/신경림 (0) | 2017.12.13 |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니이체- (0) | 2017.11.08 |
시인과 소설가(이경자의 [시인 신경림]-황현산 문학평론 (0) | 2017.09.23 |
"내 시(詩) 아무리 어려워도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아 -박상순- (0) | 2017.09.21 |
[광화문에서/김선미]마광수 교수의 문학수업 (0) | 2017.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