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제16강 축하와 행사에 관한 시의 문제

운산 최의상 2017. 1. 23. 09:45

▨ 축하나 행사에 의한 목적시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앞서 배운 서정과 서사는 시의 큰 맥락의 한 부분입니다. 모든 시가 이 두 가지의 큰 격식과 표현 양식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시작품이 이 두 가지 양식을 크고 작은 영감과 이미지를 혼합하여 짧은 형식의 작품을 창작하기도 하고 긴 형식의 작품을 창작하기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작품은 순수한 시의 세계를 그려 나가는 아름다운 영역입니다.  
  그러나 시의 형식을 빌려 축하나 애도나 기념시를 창작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민중을 선동하거나 정치적 풍자를 위한 시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쓰는 경우라 하여 목적시의 부류에 넣기도 합니다.  
  대체로 이러한 시는 그 대상물에 대한 찬양이나 칭송, 애도를 일반적 표현 방법으로 창작하게 됩니다. 찬양이나 칭송을 하더라도 그것이 맹목적인 것보다 타당성과 합리성을 찾아서 그 대상 자체에 대한 비유나 상징의 형식으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 해방 전후기에「프로」문학이라 하여 우리 시문학사상에서 목적에 수반되는 시운동이나 시의 표현법을 이용하여 격양된 사상을 포고하려는 의도적인 작품을 발표한 시인이 많았습니다. 임화의 다음과 같은 시「깃발을 내리자」는 1947년에 발표한 것으로 이러한 계층에 속할 것입니다.
    
          살인의 자유와
          약탈의 신성이
          주야로 방송되는
          남부조선
          더러운 하늘에
          무슨 깃발이
          날리고 있느냐
          동포여
          일제이
          깃발을 내리자      
  
  광복 무렵의 좌익 계열에서 보여준 이러한 시들은 집단적인 주제를 다루고 선동과 선전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상상력이나 이미지를 찾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기법으로 볼 때는 더러는 풍자적일 수도 있으나 외부적 충동이 더욱 큰 것입니다. 시를 정치 목적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은 문학 자체를 위해서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만약 인간형성 자체를 고발하고 저항한다 하더라도 주객관적인 타당성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고급스럽게 표현해야지 정치적 슬로건 형식으로 표현된다면 그것 역시 큰 문제일 것입니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이런 문제는 이 곳에서 더 구체화 시켜 말할 성질이 아니므로 이 정도로 하여두고 축하나 행사를 위주로 하는 시의 경우는 어떤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작품은 그 축하나 행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을 알리고 그것에 주된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축시>를 한편 보도록 합시다.

  아 영원한 민족의 얼
  3.1 정신 이어받아
  사나운 비바람에
  민족의 길 밝힌 등불
  슬기롭다 정의의 필봉

  눌리고 밟혔건만
  쓰러진 글자 없이
  겨레에 바친 충성
  살아서 돌아와
  자유와 같이 나라 섰네

  아 영광하라 동아의 얼
  수난에서 반세기
  세계로 뻗어간다.
  먼저 쳐다보이네.
  앞서가는 동아의 깃발

  이 시는 김광섭 시인의 동아일보 50주년에 붙여 쓴「찬가(讚歌)」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이 시에서는 동아일보가 걸어온 50년의 어려운 고통의 가시밭길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연에서는 어려움을 이겨낸 의지를, 2연에서는 굳건하게 이어온 역사를, 3연에서는 미래로 향하는 굳은 신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50주년 축하시이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틀은 없습니다만 축하하는 대상에 대한 역사적인 상황과 축하의 내용은 분명하게 나타나야 하기 때문에 축하대상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칭찬과 감동적인 시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등불> <영광하라> <깃발>등의 시어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신년시>도 그러한 분위기를 나타냅니다.  

  토끼여, 찬성이로다
  용궁 낙정연의
  너비아니 얻어먹을 생각.
  삼팔 마고자도
  한 벌 얻어입을 생각.
  토끼여 찬성이로다.

  토끼여.
  이러한 그대의 구차한 생각.
  그대의 그런 아방뛰이르
  두루 찬성이로다.

  그러고 토끼여.
  만길 운명의 바다 위에 드러난 사실.
  떨리는 네 간장.
  네 거짓말도 찬성이로다.
  
  그러고 토끼여.
  맞속이어 돌아오는 거북이 등 위의
  아찔한 아찔한 드릴의 바람,
  되돌아와 밟아 보는 故土,
  다시 역시 먹게 된 도토리 도토리.
  그것도 찬성이로다.

  이 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1963년 1월 1일의 신년시입니다. 토끼의 해라 토끼에 대한 찬양과 용궁에서 돌아오는 토끼전의 이야기를 비치어 토끼의 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런 신년시의 경우 대부분 이 새해에 대한 감탄과 전진적인 방향을 고무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나 서정주 시인은 오히려 토끼해에 토끼에 얽힌 이야기를 도입함으로 신년을 찬양하는 방법을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여 대체로 신성한 느낌을 주는 시가 되고 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 만약 <새해에 태양이 돋아오는 새해>식으로 읊어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정주 시인은 오히려 토착적인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설화적인 이야기를 그 소재로 삼음으로써 더욱 신성하고 해학적인 웃음이 절로 나도록 표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첫 연에서부터 해학이 넘칩니까. <찬성이로다>에서 어깨춤이 절로 나는 풍류를 곁들임으로써 마치 농악의 가락이라도 들리는 듯 했고 <삼팔·마고자도 한 벌 얻어 입을 생각>이 <찬성이로다> 했습니다. 설날이기에 <삼팔 마고자>도 입어야 하고 설화에서도 <삼팔 마고자>라도 입고 있을 법한 영상을 불러 일으켜 설날임을 은연중 나타내 줌으로써 신년시의 품격에 딱 들어맞도록 해 놓았습니다. 거북에게 유인되어 바다로 간 토끼가 교묘한 술책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를 <떨리는 네 간장 네 거짓말도 찬성이로다> 했습니다. <거짓말>도 찬성한다는 해학미, 그것은 거북에게 속아간 토끼의 생활에 대한 지묘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신년시에는 행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설화를 들어 이야기 형식으로 포현함으로써 따분한 웅변조의 격식을 벗어나 멋과 재미를 겸비한 시라고 할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시는 순수한 문학적인 정서보다는 그 사실이나 행사 및 대상에 대한 태도가 엿보이는 목적이 수반된 시라고 하지만 그 표현의 기법은 전혀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는 방법으로 창작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죽음을 애도하는 조시(弔詩)입니다.  

        이보게, 이사람 임당,
        정말 자네가 간 것인가
        어디로 그렇게 바삐 가야하나
        온 세상이 새로운 세기를 맞아
        흥청이는 흥에 따라 가고 싶은 것이냐
        정말 자네는 매정하네.

        임당 이사람아,
        밤낮없이 학교 연구실 아니면 집무실에 앉아
        꾸역꾸역 줄담배를 태우는 자네.
        새벽이면 불이 켜지고
        늦은 밤까지 불빛을 안고서
        자네는 너무 하나에만 골몰했네
        인생 삶의 질곡보다 학교 일에
        신들린 사람같이 메달리며
        인생과 삶의 원천을 찾으려 했네.

        정말 자네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알면서
        삶에 너무 인색하지 않았나.

        오늘은 이천년 첫달 사흘날이네
        자네는 왜 우리와 같이 이렇게 서 있지 못하고
        어디 그렇게 얼굴을 숨기고 있나
        어서 일어나
        나와서 그 특유의 미소를 보았으면 하네.

        자네의 부인과 아이들이 보고 싶지 않은가

  이 조시는 필자가 동덕여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0년 새해 벽두에 작고한 조상기 시인의 장례식에서 낭송한 것입니다. 시인에 대한 애도와 살았을 때의 추억과 죽음에 직면하는 슬픔을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는 대체로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슬픔을 말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곤혹스러운 표현과 지난날의 회고 등이 내용을 이룰 수 있고, 유족에 대한 감상적인 이야기도 곁들일 수 있습니다.

▨ 기타 시들의 이해하기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시에서는 시적 표현이 회화적으로 표현하거나 숫자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문예사조사에서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라 하여 문학평론가 이상섭 교수는 이를 "초현실주의는 이름이 암시하듯이 사실주의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다. 의식세계의 사실은 실제에 있어서는 인위적인 조직과 합리화의 과정을 통하여 꾸며낸 것이므로 그만큼 인간의 지정한 의식에서 멀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서 볼 때 표면적 사실은 거짓인 셈이다. 또는 무의미 하든가 무가치하다. 초현실이야말로 진실이며 이 진실을 파악하고 전달하는 것은 인간을 조작된 일상의 사실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그러므로 현실, 아니 진실을 덮어버리는 일체의 도덕, 철학, 미학은 부정되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사람은 우주와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또한 진실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 해방을 강조하는 혁신적 태도가 그 전 시대의 다다이즘과 크게 다른 점이다."라고 말하면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작품은 우리가 일반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시의 표현이 아니라 다른 특수한 기교에 의해 작품을 창작하는 시인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상이라는 시인의 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시인의 작품은 다소 괴팍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대체로 이러한 스타일리스트에 속하는 기교적인 시, 슈르계통의 시를 쓰는 분들은 괴짜적인 시를 씁니다. 이러한 시들은 사실 그 내용의 파악에도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하는 어렴풋한 의미는 알아도 진지한 내용을 파악하기란 정말 힘든 일인 것입니다.

①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기   가
   라랴   러려
   로료   루류
   르리   라

②   1  2  3
    1 · · ·
    2 · · ·
    3 · · ·

      3  2  1
    3 · · ·
    2 · · ·
    1 · · ·

  n P h  = n ( n - 1 ) ( n - 2 ) …… ( n-n+1 )
(腦髓는부채와같이圓에까지展開되었다. 그리고완전히廻轉하였다.)  

③ 1·( C · U )
   유리창에 시꺼먼 손바닥.
   따악 붙어있다.
   지문엔 나비의 눈들이……
      ( M · S )
   쇠사슬을 끌고.
   수많은 다리의 행진.
      ( O  · S )
   M  「 아카시아 꽃의 계절이었는데…… 」
   W  「 굴러 내리는 푸른 휘파람도…… 」
                                    - 밝은 목금 소리 -

  ①은 한하운 시인의「개구리」라는 제목의 시작품이며 ②는 이상 시인의「線에 관한 각서 3」이며 ③은 조향 시인의「검은 SERI-ES」라는 시의 앞 연입니다.
  ①은 청각적인 이미지로 개구리의 소리를 시화한 것입니다. 한번 이 시를 소리내어 읽어 보십시요. 그러면 한 여름밤 개구리가 소리내는 울음소리, 또는 노래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특이한 기교를 부려본 재치있는 시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는 완숙한 경지에 도달해 그 형상과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인식하여 가장 가깝게 접근하는 정신적 태도가 깃들어야 좋은 시로써 인식되리라 생각합니다.  
  ② 이상 시인이 1931년 10월『조선의 건축』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나타낸 시입니다. 선에 대한 각서라 했으니 나열의 방법을 처음에는 1 2 3으로 하고 그 다음 연은 3 2 1 로 했습니다. 부채살이 펴졌다 오무려졌다 하는 동작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합니다. 좌우의 부채끝이 모였다 펼쳐졌다 하는 그러한 동작의 반복인지? 그리고 수학적 공식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단한 수수께끼를 풀어야 할 것 같은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향은 슈르계통의 시로써 특수한 경향의 시라고 하겠습니다. 현실의 감각을 뛰어 넘어 새로운 세계로 도전하고 싶은 인간의 욕구와 정신적인 갈등이 이와 같은 문명적인 시를 낳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입니다.
  ③의 시는 첫째 연인데 마치 드라마의 시나리오와 같은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노드라마의 낭송시 형식으로 짜여진 청각적 형식이 더욱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작품도 특이한 기교에 의해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습작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시적 감수성과 언어적 기교를 인식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습니까. 시의 표현 기술이란 시인이 창작해 내고 이를 다듬는 기법이기에 여러 양식을 실험하고 시도해 보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다만 그러한 표현이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는 시인이 생각하고 독자가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실 이러한 3편의 시에서 본 바와 같이 이러한 시는 특히 난해한 시의 일종입니다. 시가 독자에게 감동과 정서를 준다고 하지만 이러한 시에서 정서나 감동을 찾기란 쉽게 해석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시에서 아무런 감동이나 정서가 없다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시각적인 것은 시각적 이미지의 상태로 보아야 하고 청각적인 것은 청각적 이미지로 보아야 합니다.
  최근에 박희진 시인이 시집『1행시 960수와 17자시 730수. 기타』라는 시집을 간행했습니다. 한 행만으로 시를 완성한 경우입니다. 순간적인 발상과 이미지의 찰나를 만나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세 편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1.
      終末은 없다. 시시각각 새롭게 시작하라
      종말
  
        2
      나무엔 꽃이 피는, 눈엔 눈물이 솟는 소리.

        4
      마치 누에가 뽕잎을 먹어가듯 책을 읽는 사나이.
  
  분명히 이러한 시적 실험은 많은 독자의 공감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한 행이라고 감동이 없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그 감동의 전달이 짧고 순간적 표현이지만 그 느낌을 받아들이는 독자에 따라서는 더욱 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명언적, 잠언적 양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시적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박희진 시인은 시집의 서두에서 <1행시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1행시는 단도직입(單刀直入)이다. 번개의 언어다. 1행시는 점과 우주를 하나로 꿰뚫는다. 1행시는 직관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1행시는 시의 알파이자 오메가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하이쿠(俳句)라는 5. 7. 5의 3귀의 17음의 단시형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들,
  이러한 형식의 모든 작품들을 대할 때 시의 감동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머리 속에 넣어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특수한 표현의 작품이 어떤 것인가라는 것만 인식하고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시의 감동이란 느낌에 잠복해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그 느낌은 서정시에만 찾으려 하지말고, 이러한 시작품에서도 깊게 파묻혀 있는 묘한 감동과 느낌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모든 시에서 오는 감동의 요소를 찾을 수 있고, 숨겨진 비밀스러운 것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풍경(prologue and epilogue)
글쓴이 : 최 태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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