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제15강 시에 있어서 서정과 서사의 문제

운산 최의상 2017. 1. 23. 09:44
▨ 서정의 아름다움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긴 시간에 걸쳐서 과연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서부터 시가 완성되는 과정까지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시를 습작하는 기본 과정에서 대부분의 일들을 찾아보았고, 시인의 실제 목소리도 들어보았습니다. 시란 결국 어려우면서도 우리에게 많은 감동과 정서를 준다는 점도 아울러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다음 2단계로 접어들려면 이젠 여러 가지 수사 기법에 관한 문제를 풀어 가야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좀 뒤로 미루고 우선 시작품의 제작 과정에 여러 가지의 종류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 주변의 시에는 어떠한 시들이 있을까요. 그러한 여러 종류를 찾아서 그 감상의 맛과 멋을 느껴보도록 합시다.
  서정시는 lyric라고 표현하는데 서양 원어는 lyra라는 현악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는 원래 읊고, 노래하고, 춤추기 위한 문학의 하나였기에 개인의 감정을 짧게 표현하는 시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서정의 세계를 물리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시에서 풍겨오는 서정-. 그것은 먼 산 위에서 들려오는 은은한 종소리와도 같은 것이며,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뱃고동과도 같을 것이고 어느 누군가가 달밤에 불어보는 피리나 휘파람 소리와도 같을 것입니다.
  서정시는 사람의 근본 욕구인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문학으로 하나의 형식이 아름답고 친근한 마음으로 전달되는 문학입니다. 서정시인의 작품이 우리들이 일상으로 흥얼거리게 하는 요소는 감정과 감정을 연결하는 정서가 절실해지기 때문입니다.
  문덕수 시인은『시론』에서 <서정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서정’인데, 그 서정은 내면화된 주관적 서정이다. 외적 사물을 이미지로 형성하여 어떤 정서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거나, 혹은 외부의 사물에서 자극을 받은 감정의 반응이건 간에, 서정시의 모든 정서는 자아의 내적 체험을 통해서 형성된 정서다.>라는 말로 내면화된 주관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시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이 서정시이며 그 서정의 세계 역시 다양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서정을 읊으면서 사랑이나 풍요로운 고향을 생각하며 멋과 사랑을 한껏 노래하는 것이 서정시인 것입니다.

  시몬, 눈은 그대 목처럼 희다.
  시몬, 눈은 그대 무릎처럼 희다.

  시몬, 그대 손은 눈처럼 차갑다.
  시몬, 그대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꽃의 입맞춤을 받아 녹는다.
  그대 마음은 이별의 입맞춤에 녹는다.

  눈은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서 슬프다.
  그대 이마는 밤색 머리칼 아래 슬프다.

  시몬, 그대 동생인 눈은 안뜰에 잠잔다.
  시몬, 그대는 나의 눈, 또한 내 사랑이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으로 외국 시를 한편 인용하였습니다. 이 시는「구르몽」의 정열적인 사랑의 시입니다. 서정시 중에서도 사랑을 노래한 시를 대하면 나 또한 사랑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판단과 생각-. 구르몽의 시에서 보여지는 그 많은 사랑의 비유는 바로 서정시의 아름다움이고 그 정수인 것입니다.
  <눈>은 <목처럼 희고> <무릎처럼 희며> <손>은 <눈처럼 차갑고> <마음>은 <눈처럼 차갑다>는 구르몽은 <불꽃>의 입맞춤에 녹아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아픔은 아픔 그 자체로 끝나지 않으니까요. <눈>은 소나무 가지에 쌓여 <슬프고> <그대 이마>는 밤색 머리칼 아래 <슬픕니다> <그대>는 나의 <눈>이요 <사랑>이라 했습니다. <눈>은 <사랑>을 볼 수 있는 그 진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구르몽의 서정은 사랑의 아름다움에 있고 그 아름다움이 지나쳐 슬픔으로 용해되어 나타납니다. <눈>과 <사랑>이 일치하는 이 엄청난 사랑의 묘미, 이것이 구르몽의 아름다움이고 기쁨입니다.
  구르몽의 사랑과 자아는 완전히 융합을 이루어 모든 것이 완전히 내면의 세계로 일치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자기 표현의 감정에 도취되고 빠져 버렸습니다.    
  서정시의 면모는 이러한 사랑의 기쁨, 사랑의 아픔, 사랑의 묘미에 있기도 합니다. 이런 속에 빠져들면 베토벤의「전원」속으로 흡입되는 기쁨의 충만함에 가득 고여진 희열 속으로 스며들고 마는 것입니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펼쳐지는 장엄한 열광이 서정시속에 들어있습니다.
  사랑은 바로 이와 같이 불길 같은 것입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의 행인
  당신을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며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이 시는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한용운 시인의「나룻배와 행인」입니다. 희생적인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의 희생, 여기에 아무도 범치 못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이 나에게 무슨 짓을 하여도 나는 사랑하는 당신을 위해 바치는 정성스러운 사랑의 농도가 여기 있습니다.
  사랑의 신비스러움, 그것을 가장 격렬한 요소에 접어들고 그것이 강해지면 자신을 소멸시킬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나룻배>가 되고, <당신은 행인>이 되는 사랑의 극치, 스스로 나룻배이기를 희구하는 정성스런 사랑이 여기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런 아름다운 사랑의 농도 속에 파묻힌다면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 있어도 좋을 것입니다. 스스로 나룻배가 되어주고 행인이 되어 주려는 오묘한 사랑의 정신입니다.
  한용운 시인은 <흙발로 짓밟고> <물을 건너고>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기다리는 마음, 그러나, 그러나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보지도 않고 가> 버리는 아픔이 있어도 그대를 사랑하겠다는 <나룻배>의 연인이여.
  만해는 이러한 엄청난 사랑을 민족과 국가를 빗대어 노래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도 그러한 일면으로 보아도 됩니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이 작품은 박목월 시인의「윤사월」이라는 시입니다.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윤사월>과 <눈먼 처녀>라고 했습니다. 이 시에 대해서 박목월 시인은「윤사월은 사월보다 정서적인 달입니다. 그것은 월력상 거듭되는 달로서,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 여유와 되풀이되는 것의 음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젊은 날에 맞이하는 <또 하나의 사월>은 햇볕이 두터워지고, 계절이 꽃에서 잎으로 옮아가는 사월과는 다른, 계절적인 착오감과 회상적인 애수를 머금은 달입니다. 그 정서적인 <윤사월>과 <눈먼 처녀>와의 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려운 노릇입니다. 시는 어느 면에서는 설명이 불가능할 것으로, 그 수상한 눈짓과 신비 속에 생명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밝고 평화스러운 자연 속에 인간의 숙명적인 비극성과 어두운 운명을 혹은 자연의 섭리와 대조적인 것으로, <눈먼 처녀>의 어두운 내면적인 고뇌를 부각시키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라고 했고, 장만영 시인은 <송화 가루를 날리는 소나무가 그득 들어 차 있는 외따른 봉우리가 있습니다. 때는 마침 윤사월이었습니다. 해가 퍽 긴 때입니다. 그 외따른 봉우리 나무 수풀 속에서 꾀꼬리 놈이 한종일 울어댑니다. 그 울음소리를 산을 지키는 산지기네 외따른 집에 사는, 눈이 먼 처녀가 문설주에 귀를 갖다대고 엿듣고 있습니다. 무슨 행운이라도 찾아오나 하고, 이 시는 이처럼 어린이의 동화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사실 동화를 쓸 줄 아는 이라면, 이 짧은 시 한편을 가지고 책 한 권이 될 수 있는 긴 줄거리의 이야기를 능히 써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동요를 많이 써 온 이 시인만이 이런 동심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퍽 곱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이 시「윤사월」은 2행 4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연마다 7.5 또는 6.5의 정형률을 밟고 있습니다. 첫째 연의 7.5 둘째 연과 셋째 연이 6.5, 그리고 끝 연이 7.5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 시를 가만히 분석해 보십시요. 첫째연마다 <외딴 봉우리>를 놓고 그 외딴 봉우리를 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마다 <산지기 외딴 집>을 배치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외딴 봉우리에다가, 한 종일 울고 있는 <꾀꼬리>를, 외딴 집에다가 <눈먼 처녀>를 또한 배치해 놓고, 윤사월을 배경으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동화를 읽는 느낌’을 주는 시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의 세계가 서정시의 아름다움이고 그 서정의 미적 대상이 바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요소가 비치어 줍니다. <윤사월>과 <눈먼 처녀>와의 관련성, <눈먼 처녀>가 가져다 주는 슬픈 운명 같은 상징성이 이 시의 정서적 감정을 한층 더 깊이 있게 하여 줍니다.
  서정의 아름다움은 바로 시의 아름다움이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서사의 사건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은 서사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어 봅시다. 서사시는 대체로 사건과 스토리가 들어있습니다. 서사시는 영웅적 서사시와 창작적 서사시로 나누어집니다만 어느 서사시든 영웅적 운명이나 전설, 전쟁, 역사적 사건 등이나 개인적인 창작행위의 스토리가 담겨지게 됩니다.  
  문학평론가 이상섭 교수는 서사시의 일반적 특성을 <①주인공은 위대한 국가민족적, 인류적 영웅이다. ②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은 광대하다. ③영웅적 행위는 인간의 차원을 넘어 초자연적 성격을 띠운다. ④귀족적 천재에게 음송되던 것이므로 장중한 문체로, 또한 거기에 어울리는 운율로 구성되어 있다. ⑤서사시는 보편적 중요성을 갖는 큰 주제를 다루므로 자연히 객관적이다.>라는 말로 서사시가 될 수 있는 전반적인 문제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흔히들「일리아드」나「오딧세이」같은 서사시를 최초로 잡습니다. 다만 이러한 서사시는 영웅이 겪는 여러 가지 운명적인 이야기가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김동환 시인의「국경의 밤」, 김용호 시인의「남해찬가」, 신동엽 시인의「금강」, 최근에는 장효문 시인의「전봉준」, 이근배 시인의「한강」등의 서사시가 나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해하기 쉽게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사시로 보는 파인 김동환 시인의 서사시의 서두를 보도록 합시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 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기 국경 강안을 경비하는
  외투 쓴 검은 순사가
  왔다-갔다-
  오르며 내리며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 실이 밀수출 마차를 띄어 놓고
  밤 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아! 하고 붙는 어유 등잔만 바라본다.
  북극의 겨울밤을 차차 깊어 가는데.

  파인 김동환 시인의「국경의 밤」서두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전 3부 72장으로 된 우리나라 신시사상 최초의 서사시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시는 주로 향토적 애국적 낭만적 민요적인 특징을 지니면서 정서나 감각 이미지보다는 사건을 위주로 하여 쓰여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스토리가 담겨지면서 시의 형태를 빌고 있음은 이 서사시로서는 다소 완벽성을 잃고 있으나 최초의 서사 작품이라는 데에 의의를 두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내용을 조남익 시인은『현대시해설』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제1부 (1장~27장) 작품의 무대는 두만강 유역인 국경 지방, 때는 설날이 가까운 어느 겨울이다. 통제품의 하나인 소금을 밀수출 길로 남편을 보낸 아낙네의 근심 어린 대사로부터 작품이 시작된다. 그 날 저녁 이 마을에는 의문의 청년이 출현,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가운데, 뜻밖에도 청년은 아낙네의 문간에 나타나 주인을 찾는다.
  제2부 (28장~57장) 아낙네와 청년의 8년 전 과거가 소묘된다. 두 사람은 어렸을 때 소꿉 친구였고 자라서는 남몰래 좋아하게 된 사이였다. 그러나 재가승인 여진족 후예인 순이는 여진족 이외의 피를 지닌 사람에게는 시집갈 수 없다는 인습과 율법에 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순이를 빼앗기자 소년은 10일 후 마을에서 행방을 감춘다.
  제3부 (58장~72장) 이 날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어 옛 마을에 돌아왔다. 그리고 남의 아내가 된 지난날의 소녀를 찾아 그 집 문을 두드린다. 3부는 이 두 남녀의 대화로 시작된다. 청년은 다시 옛날의 사랑으로 돌아가자고 간청한다. 제한된 자기의 운명을 들어 완강히 거절한다. 그 때 밀수출을 나간 여인의 남편의 마적떼의 총을 맞아 시체가 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이 작품은 절정을 이룬다. 남편의 시체를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다하여 묻는다. 두만강 건너편 중국 군영에서는 때마침 점심때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울린다.
  이렇게 끝맺는 이 서사시는 함경도의 사투리가 갖는 남성적인 리듬과 매력으로 구사되어 있습니다.
  순이라는 여진족 후예의 여인을 내세워 수난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이 시의 매력은 바로 당시의 실상을 서사시로 이야기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사실 서사시는 산문 형태의 이야기를 시라는 형식을 빌어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산문과 변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장시(長詩) 형식의 시가 구성되기도 하는데 이 장시는 서사시와는 다릅니다. 짧은 시의 이미지를 좀 더 길게 쓴다거나 그렇잖으면 삽화적인 소재를 시로 나타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장시에는 이미지 정서 정감 등을 특히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서사시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습작되어야겠고 새로운 서사형태가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를 사랑하는 여러분,
  시적 환상과 매력으로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표현해 본다는 것은 다른 산문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언어의 리듬 감각과 이미지의 비약에서 나타나는 암시적이고 내포적인 표현이 될 것입니다.
  시로써 쓰는 소설, 이것이 서사시이며 일반 소설에서 느껴보지 못하는 이미지의 충격과 운율의 묘미가 함께 가득히 몰려오고, 때로는 장중한 리듬과 억양의 황홀경에 젖어드는 맛, 그리고 온갖 풍상과 사랑과 배경과 인물이 활약하는 맛을 보는 것도 역시 서사시의 매력입니다.
출처 : 내 마음의 풍경(prologue and epilogue)
글쓴이 : 최 태 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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