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동그라미 사랑
최우철
사탕은 동글
달걀도 동글
꽃도 달도 동글동글
꼬리 말고 잠든 우리집 멍멍이도 동글
날 볼 때면 커지는 엄마 눈도 동글
빵빵한 아빠 배도 동글
뽀글뽀글 할머니 파마 머리도 동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전부
동글동글
‘사랑’ 이라고 발음하자
입안에 혀가 어느새 동글
동그라미 사랑
데굴데굴 굴러
엄마
아빠
할머니에게 간다
“엄마도, 사랑해”
“아빠도, 사랑한다 우리 아들”
“할머니도, 어이구 내 강아지 사랑해”
눈덩이처럼 커진 사랑
데굴데굴 다시 나에게 굴러온다
당선소감 / 시는 아프고 외롭지만, 동시는 설레고 행복합니다
젊음이 불안했습니다. 연애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고 예쁜 가정을 꾸리는 상상을 했고, 나중에 우리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동시를 쓰기 시작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많은 작품을 쓰지도 못했고 많은 작품을 읽지도 못했는데 덜컥 당선되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고 가슴이 터질 듯 기뻤지만 곧 부끄럽고 두려워졌습니다. 아직은 작가라는 이름을 얻기에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시를 앓는 사람들은 모두 다 아프고 외롭습니다. 저에게도 시는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동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동시를 쓰고 읽을 때만큼은 스물아홉, 젊음을 불안해하는 어른이 아닌 아홉 살 진짜 어린아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설레고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안고 시작하는 길입니다. 지금처럼 재미있게 아이들과 어른들에게 감동을 주는 따뜻한 시를 쓰겠습니다.
늘 넘치게 부어주시는 주님께 가장 먼지 이 기쁨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네가 무슨 동시냐며 놀리면서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해준 안양예고 친구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 나를 어린아이로 만드는 동시를 닮은 나의 그녀 민지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단 말 전합니다.
늘 쉬지 않고 기도해주시는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에서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님들께도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 자신보다 저를 더 아끼고 사랑해주는 부모님에게도 진심을 담은 사랑을 전합니다. 최우철
1986년 11월 서울 출생ㆍ세종대 역사학과 졸업
[2015 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 말라버린 마음 속 천진성 다시 샘솟게 하는 작품
심사를 하면서 주목할 만한 신인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가 기대한 것은 동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신인다운 패기, 발상의 대담함, 표현에 대한 남다른 열정, 최초로 만나는 리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움’에 대한 기대에 대부분의 작품들은 미치지 못했다.
작품의 주된 독자층이 어린이라고는 하지만, 동시 또한 시이고 느낌의 예술이다. 우리말의 맛과 멋을 자연스럽게 다룰 줄 아는 천의무봉의 솜씨가 있어야 하고, 생략의 문법으로 큰 여백과 긴 울림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순수한 가슴으로부터 천진스런 말들이 흘러넘쳐서 어린 독자의 가슴에 공명의 파도를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많은 응모작들에선 관념적인 어른의 냄새가 났고 작위성이 눈에 띄었으며 심지어 어떤 작품에서는 실망스럽게도 시대착오적인 교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최은묵의 ‘거미집’ 외 2편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작품 처리가 돋보였다. 그러나 너무 밋밋해서 무엇이 기억에 남을지 의문이었다. 임선우의 ‘술래잡기’ 외 2편은 세련된 묘사력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아직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작품세계가 없어서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최우철의 ‘동그라미 사랑’은 섬세한 마음의 무늬와 결이 돋보인 작품이다. 라임을 재미있게 펼쳐나가는 운문시적 재능과 소리글자인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요리하는 솜씨로 보아 만만치 않은 문학적 내공이 느껴진다.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 동시를 쓰다가 가슴 속 천진성의 샘이 말라버린 것처럼 여겨질 때, 초심으로 돌아가서 ‘동그라미 사랑’을 다시 읽어보고, 너그럽고 따스하고 천진한 본래 마음자리를 확인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 이상교(아동문학가)ㆍ최승호(시인)
서른 전 등단 꿈이 이뤄져 연애편지에서 영감 얻었죠
[2015 신춘문예] 동시/ 최우철 인터뷰
“서른 전 등단 꿈 이뤄 기뻐… 연애편지에서 영감 얻은 시”
201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작 ‘동그라미 사랑’의 최우철씨
“서른 전에 등단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루다니….”
후하게 쳐도 스무 살로 보이는 앳된 청년의 눈에서 빛이 몽글몽글 피어났다. 추위를 뚫고 온 터라 발간 볼은 더 붉게 상기됐다.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 당선자 최우철(28)씨다. 당선작 ‘동그라미 사랑’으로 그는 비로소 시인이 됐다. 동그란 사랑이 가족들에게 굴러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다시 나에게 온다는 내용이다.
가족의 사랑을 노래했지만, 영감은 손으로 연애편지를 쓰다 얻었다. “여자친구한테 쓴 편지에 ‘동그라미가 비탈에서 아무 노력 없이도 끌려서 내려가듯이 너를 향한 사랑과 끌림도 그렇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적고 보니 사실 모든 사랑이 그럴 텐데, 이걸로 동시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지요.”
사랑의 속성과 ‘사랑’을 말할 때 혀의 모양을 연결 지은 시다. “동글” 같은 단어로 운율을 살렸다. 당선작의 “‘사랑’ 이라고 발음하자 입안에 혀가 어느새 동글”이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구절이다.
시를 쓰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고교 때부터 했다. 최씨는 “하루에 10시간 이상 입시에 투자하는 청소년기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경기 안양예고에 진학했다. 대학도 문학특기자로 입학, 졸업했다.
고교 때부터 습작처럼 시를 쓰기 시작하다 동시로 바꾼 건 올해 들어서다. “할머니도 제가 쓴 동시를 좋아하시는 걸 보고, 동시야 말로 쉬우면서도 모든 연령의 공감을 얻는 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 썼던 시 50~60편을 동시로 바꾸는 작업부터 시작해 새로운 시들을 써나갔다. ‘동그라미 사랑’은 올해 쓴 시를 다듬고 다듬은 것이다.
당선 전까지 최씨는 주위에 자신을 “카페 창업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시를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만, 시로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요. 밥벌이할 일이 있는 게 시를 더 오래 쓰는 길이겠다 싶어서 카페를 차리려고 하고 있어요.”
물론 ‘돈 되는 글’도 써봤다. 대중가요 작사다. 하지만 으레 주문에 맞춰 써내야 하는 작사는 ‘공장형 작업’처럼 느껴졌다.
신춘문예로 등단하게 된 최씨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아동 애니메이션 일을 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동시 그림집을 내는 거다.
“동시를 쓸 때만큼은 어린아이가 돼야 해요. 그 몰입이 참 설렙니다. 그 느낌을 잊지 않고 따뜻함을 주는 동시를 쓰고 싶어요.”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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