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는 구걸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다. 시를 구걸하는 사람이다.”
900편의 시를 쓴 그에게 그 모든 창작의 시간은 캄캄하였다. 심한 무력감과 추위와 낭패를 경험하였다. 반복할 수 없는 창작의 무게 앞에서 그에게 펼쳐진 백지는 공포이고 엄격한 추위였다. “힘을 주십시오. 쓸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였다.
박목월도 그랬다. 글을 쉽게 씁니까? 물었을 때 그는 “아니지요, 조그마한 바늘 끝 같은 불빛을 따라가면 그것이 촛불처럼 일어나기도 합디다” 하였다. “그 사람은 이마로 바위로 가는 사람”이라고 목월의 아내는 말하였다.
그러고 보면 김남조에게 그 두려운 백지를 마주하게 하는 힘은 “어떤 분의 축복”이었다. 하여 막히면 기도하였다. 여든셋, 이때까지 변함없이 알고 있던 분은 그분 한 분이다. “내 문학의 저수지는 예수님이다”고백한다.
나의 주님
때때로 제 골수에
얼음용액을 따르시니
이 추위로
시 쓰나이다
사람은 길을 찾는
미혹의 한 생애이오니
이 어설픔으로
시 쓰나이다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라 이르시나이까
사랑은 하되
필연 상처 입히는
허물과 회한으로
시 쓰나이다.
날빛 같은 날에도
먹장 같은 날에도
아가들 태어남이 숙연하옵고
이것만은
늘 잠깨어 반짝이는
모든 아름다움에의 민감성
이 하나로 재주도 없이
평생에 시 쓰나이다
(김남조의 “시와 더불어” 전문)
#슬픔 그리고 기쁨
그의 세대는 국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모국어에 서툴렀으나 그 서투른 모국어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그의 세대는 다른 세대가 지니지 못한 재산이 있었다. 이를테면 슬픔 같은 것이었다. 식민지의 아이로 태어나 자라면서 치욕과 배고픔과 초라함을 견뎠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다. 가장 슬픈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슬픔에 굶주려서 슬픔을 먹기 위해 우리나라에 왔다고 말한 외국인도 있었다. 그렇게 슬픔은 식량이었고, 슬픔을 저수지 삼아 시의 갈증을 해갈한 셈이었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고여서 섞지 않고 흘러 기쁨이 되었다. 일본에서 돌아왔을 때 해방을 맞았다. 그 해방의 날에 그는 “나의 전생을 통하여 나에게는 절망이 없다”고 서약하였다. 독립국의 국민이라는 그날의 기쁨과 영광, 그것은 평생을 통해 김남조의 문학과 삶의 기둥이었다.
#나이듦 그 신비한 발견
니코스 카잔차스키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말을 조련할 때 말이 잘 달리게 하는 것은 절반일 뿐이고, 배가 고파도 달릴 수 있게 하는 게 조련법의 전부라고. 그러면서 카잔차스키는 “내겐 다른 말이 없다. 내가 곧 말이다. 내가 곧 배가 고파도 달릴 수 있는 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극기가 인격이 될 수도 있고, 신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를 이기는 일은 그렇게 가팔랐다.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정신조차 육체에 지고 만다. 그러면 영혼은 어떤가, 고민하였다.
팔십 세월을 살아오며 죽는 이가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듯 나이 들어 늙는 일 또한 처음으로 맞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맞는 모든 것은 신비롭다. 살면서 알게 되는 게 있다. 나이를 먹고 늙는 것조차 나쁘지 않고 오히려 좋고 소중하다, 생각한다. “갈수록 삶을 좋아하게 된다”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욕망이 아니다. 인생이란 게, 자연이란 게, 사람이란 게 그렇게도 잘 만들어졌음을 새삼 발견한다. 안데르센의 동화에서 그랬던가? 아빠의 하는 일은 언제나 최고라고….
#마르지 않는 샘 ‘감수성’
지금도 시를 쓸 수 있는 까닭은 시들지 않는 감수성 때문이지 싶다. 하나님은 그렇게 마르지 않는 샘을 선사하셨다. 인생을 돌아보아 단 한순간도 심심하지 않았다. 그의 샘엔 언제나 불이 밝았다. 학생들에게도 “혼자라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 순간은 오히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거나 ‘하늘과 내가 둘이 있는 시간’이었다.
“이 먼 곳까지 누구와 왔느냐?” 물을 때 칼릴 지브란은 “저와 함께 왔습니다” 하였던 것과 같다. 결코 아무도 없는 시간은 없다. 그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무료한 순간은 없다. 그러므로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노병이다.”여전히 쓸 시어들을 가진, 그러나 나이든 병사이다.
김남조 시인은?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마산고교, 이화여고 교사와 숙명여대 교수를 지냈다. 대학 재학시절인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수’(星宿) ‘잔상’(殘像) 등을 발표하며 등단,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출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였다.
인간성에 대한 확신과 왕성한 생명력을 통한 정열의 구현을 그려내고자 했던 그녀의 첫 시집 <목숨>은 가톨릭 계율의 경건성과 뜨거운 인간적 목소리가 조화된 시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작품집 속에 이러한 세계관에서 점차 종교적 신념이 한층 더 강조되어, 짙은 기독교적 정조와 더욱 심화된 종교적 신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자유문학가협회상, 오월문예상, 한국시인협회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모란장, 은관문화훈장, 만해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였다.
예술원 회원 시집 <목숨> <나아드의 향유> <나무와 바람> <정념의 기><풍림의 음악> <겨울 바다> <설일> <사랑초서> <빛과 고요> <김대건 신부> <동행> <바람 세례> <평안을 위하여> <희망학습> 그리고 지금까지 출간된 시집을 묶은 <김남조 시전집>이 있으며, 수상집 다수 및 콩트집 <아름다운 사람들> 등을 펴냈다.
출처=아름다운 동행 / 박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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