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자리 붉은 주렴 위로 내리는
저녁 으스름
텅텅 바둑돌 소리 은자의 세계
높은 누각에 머무는 손님
꽃 그림자 한가한데
세상사 승패 다투는 일 한판의
바둑일세
정조 임금의 바둑 시 한 편이다. 고전 속에서 바둑을 탐색, 연구해온 바둑 칼럼니스트 이청씨가 홍재전서에 실린 네 편의 바둑 시와 20편 가까운 바둑 글을 번역, 소개 중이다. 정조는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기예를 잘 모른다. 바둑은 예부터 문방아기(文房雅技)인데도 나는 잘 모른다. 두지 않아서 못 두는 게 아니고 본래 재주가 없어 그렇다”는 글도 남겼다. 놀랄 만큼 겸손한 임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