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거장 조정래의 삶과 문학..
-"민족을 가장 사랑한 작가란 말 듣고 싶어"-
헤럴드경제 2014.01.02
▶한국근현대사를 재구성한 조정래의 삶과 문학
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 태어난 조정래는 어린 시절 전남
순천과 충남 논산, 광주 등을 전전하며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의 참화를 직접 경험한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70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문학에 몸을 바쳤다.
"저는,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
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했죠.
내가 왜 치열하고 척박한 땅에 태어났을까, 나는 왜 문학을 하
려 할까, 그러면 무엇을 쓸까, 이런 3단계 사고를 거쳐 우리민
족의 수난받았던 역사와 분단 때문에 가려졌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죠.
근본적으로 문학은 휴머니즘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주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등단 이후 줄곧 주제의식이 강한 작품을 썼던
것이죠."
태백산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1980~1990년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소설, 대학생이나 지식인이 선정한 한국인 필독
소설 1순위로 수도 없이 꼽힌 작품이다.
지금까지 800만부라는 경이적인 부수가 판매됐다. 1945년 해
방 직후의 혼란기에서부터 1950년 한국전쟁까지 격동기를 리
얼하게 그렸고, 특히 당시 금기였던 빨치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다. 조정래는 '혹시 빨치산 이야기를 이렇게 쓰면 잡혀
가지 않을까' 하는 자기검열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국의 오늘날에 대한 작가의 진단은
1983년에서 2002년까지 조정래가 피를 토하듯 써내려간 한국근현대사
3부작은 한국문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고난과 투쟁으로 점철된
역사의 격류 속에서 명멸해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작가가 발견
한 것은 무엇일까.
" ▲ 민중의 소중함, 민중의 힘에 대한 재발견,
▲ 인간이 본능적으로 욕구하고 있는 바,
▲ 민족의 자존심, 이 세가지가 소설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주제입니다.
한때 민중의 힘이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면면히 살아있어요. 인류가
기억하는 5000년 역사를 보아도 백성을 굶주리게 하거나 팝박하는 왕조
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조정래는 수나라나 당나라에서부터 20세기 소련, 오늘날의 가다피 독재
정권까지 민중의 삶을 외면한 정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역사의 엄연한 진실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
"갑오농민전쟁 이후 30년에 한번씩 커다란 변혁이 있었고, 그게 1980년대
민주화 투쟁으로 이어졌어요. 10년 투쟁으로 군부독재 30년을 무너뜨렸
죠.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경제를 발전시킨 힘도 바로 민중의 힘이죠.
2000년 전 당나라 때무저 '백성은 바다요, 권세는 그 위에 뜬 일엽편주다'
라는 말이 있었어요. 견디다 못하면 터져요. 허허."
한국근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이어 현재와 미래의 문제까지 다룬 작품
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한국문학의 대가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한국은 어떠
할까.
그는 국제정치의 변화와 패권국가들의 각축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정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믿음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중립국 통일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영세 중립국 선
언이 한민족이 장구하게 생존할 수 있는 길이라는 얘기다. 상황이 이러한데
도 국내정치로 허송세월하는 정치권의 분발을 촉구했다. 차분하게 말을 이
어가던 작가가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것(국내정치)은 단편적이고 사소한 거예요. 지금 정치는 유치하고 무
능력해요. 두 가지 문제, 즉 NLL(북방한계선)과 국정원 문제 갖고 너무 오
래 끌어요. 해결은 간단해요. NLL은 아무것도 없잖아요. 원본 안보냈다, 한
사람의 실수였다, 잘못했다, 하면 돼요. 국정원 문제도 다툴 이유가 없어요.
대통령이 뭔가 잘못된 일이 있는 것 같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믿어달라, 앞으로 잘하겠다, 그렇게 하면 돼요. 정치력 부재 속에 시간만
낭비하고 있어요."
조 작가는 정치란 국민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그 요
체는 민생이라고 말한다. 비정규직이 2000만 근로자 가운데 890만에 이르고
국민의 47%가 하층민이라며 못살겠다고 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민주 정치는 타협을 위한 것이며, 민주정치
의 대의와 최종목표도 타협입니다. 그런데 타협을 야합과 혼동하고 있어요.
야합은 불의와 합치는 것이니 나쁘죠. 하지만 타협은 서로의 의견을 조화시
키는 것이며, 민주주의의 꽃이예요. 양당제는 첨예하게 논리적 대결을 통해
비전을 만들어내서 타협을 하라는 것이예요."
조정래는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시간을 갖고 지켜볼 것을 주문했다. 작년 말
장성택 처형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북한 정세는 김정은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내부 문제에서 발생한 것으로, 성급하게 이렇다 저렇다 결론을 내려 하
지 말고 지켜보라는 주문이다. 통일 문제도 국민의 유전자(DNA)엔 통일의
염원이 있다며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했다.
▶자폐증에 걸린 한국문학에 대한 통렬한 질타
세상이 복잡하고 답답하면 할수록 문화ㆍ예술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은 심해진다.
과연 한국문학은 대중들의 욕구를 제대로 반영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조정래는 오늘날 한국문학이 자폐증에 걸려 있다고 질타한다.
"한국문학은, 상당히 문제가 있지요. 1990년대를 통과해 오면서 문학의 사회역사
의식이 굉장히 빈곤해졌어요. 80년대 문학이 현실에 대한 발언을 많이 함으로써
거기에 대한 반감, 혹은 예술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에 함몰됐어요, 자폐증에 걸
려 있어요. 공동체의 문제에 고개를 돌렸어요. 그 때문에 대중들이 문학에서 멀
어지고 있어요."
조정래는 경제성장과 함께 문화적 욕구가 분출하고 있다며, 대중들의 외면은 작가
책임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경제력과 함께 지적 욕구도 커졌어요. 1970년대에 50만부가 팔리면 최고의 베스트
셀러였지만, 지금은 100만부가 예사로 팔려요. 영화도 10년 전에는 20만~30만명이
면 많이 들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1000만이 되고, 연간 2억명이 영화를 보잖아요.
이 사람들이 문학 독자라는 걸 작가들이 알아야 해요. 지금 문학이 외면받는 것은
작가들 책임이에요."
작가들은 인간을 위한, 인간의 삶에 기여하는 작품을 써야 한다는 것이 조정래의
지론이다. 그는 자신의 롤 모델이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라며 위고는 치열한 작가
정신을 바탕으로 레미제라블 같이 사회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공동체를 이야기하면서 예술성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작가는 민중보다 한발 앞서 가라, 그러나 한발은 민중속에 딛고 있
어라' 라고 말했어요.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150년 전 프랑스 이야기인데 지금 열
광하잖아요.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에 예술성을 결합하면 대중이 열광하죠."
▶교육문제 정면으로 다룬 작품 구상중, 이어 죽음의 문제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했다. 철저한 취재와 구상에 입각해 작품을 쓰는 작가의
계획에도 거침과 빈틈이 없었다.
"파탄상태에 빠진 한국의 교육의 문제를 쓸 거예요. 올해 취재해서 내년 5~6월
사이에 독자들을 만날 겁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인데, 거기서 10대가 절반을 차지해요. 그건 교육, 부모들 책임이에요."
소설의 제목은 물론, 마지막 문장까지 구상이 돼 있다. 제목(가제)은 < 나는 나
야 > 로 정해 놓았으며 마지막 장면은 "나는 살고 싶어, 나는 살고 싶어" 하면서
투신자살을 하는 장면이다. 작품을 위해 10대를 대상으로 취재하고 있다.
"10대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에요. 10대들이 볼 때 저는 할아버지예요.
10대들이, 할아버지 지금 뭐 하러 다니세요, 하고 묻겠지만, 그래도 써야 하잖
아요.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데. 젊은 작가들은 이런 얘기를 왜 안쓰는지..."
조정래의 취재수첩엔 어른들이 모르는 10대들의 말 수백개가 이미 들어가 있다.
"괴테가 '작가는 80의 나이에도 소녀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말했어요. 소설의
주제에 따라서 문장도 바뀌어야 합니다. 문학은 상투성과의 싸움인데, 상투성이
란 내가 쓴 문장을 말하는 겁니다."
조정래는 아직도 피가 펄펄 끓는 청춘으로 보였다. 그는 교육문제에 이어 인간
존재의 문제를 파고들 계획이다.
"교육 문제를 다룬 소설로 현실을 다룬 작품은 끝나고, 그 다음 10년 동안에는
인간 존재의 문제, 삶의 원초적인 것과 내세에 대한 문제를 다루려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될 생각이냐고 물으니 주저없이 "그럼요. 제일 의미 있고,
재미있으니까."하고 껄껄 웃었다. 나중에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느냐는
물음에 "우리 민족을 가장 사랑한 작가,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이 없어 보였다. 그는 민족을 가장 사랑한 영원한
청년작가로 보였다.
* 내용이 너무 길어 중간중간 임의로 중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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