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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좀 밀어 주실래요? [삶의 향기]

운산 최의상 2013. 11. 22. 13:35

 

 

 

[삶의 향기] "등 좀 밀어 주실래요?"

[중앙일보] 입력 2013.10.03 00:56 / 수정 2013.10.03 00:56

 

 

신아연
재호주 칼럼니스트
한국에 올 때마다 최소 한두 번은 가는 곳이 대중 목욕탕이다. 호주에는 없는 독특한 모국 체험 가운데 ‘대중탕 투어’를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날씨가 선선해지기 무섭게 이번에도 예의 벼르던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추석 명절 스트레스 풀기 수다를 떠는 부인네들 틈에 앉아 몸을 닦는데 “등 좀 밀어주실래요?” 가까이 앉았던 내 또래 여자 하나가 주저하며 머뭇대며 내게 등을 돌렸다.

 만원 지하철을 어떻게든 비집고 올라 타려고 뒤에 있는 사람에게 ‘등 좀 밀어달라’는 소리는 들어봤어도 목욕탕에서 서로 등 밀자는 사람은 내 경험으론 족히 10년도 더 된 것 같다. 더구나 요즘처럼 단순히 때를 뺄 목적으로 대중탕을 찾지는 않는 세상에서 ‘등을 밀어달라, 같이 등을 밀자’는 말에 신선하다 못해 충격을 받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긴 몰라도 어렵사리 말을 꺼냈을 그 여자의 마음을 헤아려 돌려 앉은 어깨 너머로 건네주는 본인의 ‘이태리 타월’ 대신 내 것을 사용하겠다며 일부러 친근하게 굴었다.

 실로 얼마 만인가. 생판 모르는 남의 몸에 손을 대 보는 것이.

 김 서린 목욕탕에서 자기 등을 맡길 상대를 ‘눈으로, 감으로’ 찾아 서로 ‘짝짓기’를 하고, 그리하여 ‘자기 짝’에게 ‘등짝’을 맡기고 있는 짧은 동안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 성품까지도 얼핏 느끼며 서로의 몸을 ‘더듬은’ 사람들 간에 형성된 묘한 유대감, ‘커플’들의 공감대로 인간적 훈김이 돌던 ‘그때 그 시절’의 대중 목욕탕 정서가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명절 전이나 섣달 그믐께 앉을 자리도 없이 붐비던 대중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던 일이 이제는 서민의 풍속도나 무슨 퍼모먼스처럼 아득하기에 옛 기억에 대한 아스라함이 마치 등의 때처럼 밀려나왔다고 할까.

 어깻죽지로, 팔뚝으로, 허리 밑 엉치로 닿는 도타운 손길, 비누 거품 낸 때수건의 부푼 듯 깔깔한 감촉, 자극으로 얼얼하고 화해진 몸에 끼얹는 맞춤한 온도의 물, 발그레한 얼굴로 건네는 고맙다는 인사, 혹시나 미흡했을까 상대의 표정을 살피는 배려 섞인 소심함 등 그것은 단순 때밀기가 아닌, 함께 뭔가를 나눈 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은밀하면서도 무방비한 교감, 사람의 훈기, 삶의 향기였던 것이다.

 ‘대중탕 등밀기’와의 뜻밖의 조우는 남과 몸이 닿는 일에 대한 본능적 불쾌감과 무근거한 경계심의 촉수를 누그러뜨리며 마치 단단한 덩어리가 묽게 풀려 나가듯 나와 타자 간의 요지부동한 심리적 경계선이 흐려지는 경험이었다.

 어라, 게다가 그 여자가 샴푸를 좀 써도 되겠느냐며 처음과 달리 이번에는 서슴없이 말을 걸어 왔겠다! 등을 밀어주면서 은연중, 무언중 내게 마음이 열렸다는 뜻이리라. 모처럼 드물게 고마운 일이다.

 이뿐만 아니다. ‘등 밀기 8000원’- 요금표를 보니 돈도 굳지 않았나.

 언제부턴가 버스 안에서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의 가방을 받아주는 일도 금기로 굳어져 버린 이 시대, 타인과 소통할 기미를 보일 여하한 체온 교환, 심리적 유대는커녕 가방 귀퉁이도 허용치 않는 철저한 차단과 접근 금지의 무의식적 몸짓이 우리 삶을 더욱 팍팍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게 살다가 남의 몸이 닿는 최초의 경험을 체벌이나 폭행, 더 극단적으로 말해 성추행이나 성폭력으로 맞닥뜨리게 된다면…, 아, 그건 아니다, 생각이 너무 비약되었다.

 하여튼 기회 있을 때마다 서로의 몸을 더듬어 보고 보듬어 볼 일이다. 타인의 몸에 내 몸을 부딪혀 볼 일이다. 이웃과 타인에 대한 막연한 경계심, 습관적 무관심을 내쪽에서 먼저 덜어내는 습관을 길러 볼 일이다.

 사람은 사람 속에서 서로 부대끼며 온기를 나누며 관계를 맺어가며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마른 땅에 꽂힌 송곳처럼 언제까지나 옹송거리며 위태하게 혼자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기에. 타자와의 연결 고리와 공동체 정서의 회복과 치유를 간단없이 모색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타인 접근 금지의 빗장을 풀고 대중탕에서 서로의 등 밀어주기 부활을 제안하는 바이다.

신아연 재호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