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詩論

[스크랩] 현대 시작법

운산 최의상 2013. 9. 15. 16:42

  [현대시작법]


        1,2단계 

       이또 게이찌는 시의 여덟  단계를 '한 그루  나무'를 보고, 생각하고
     느낀 순차적 단계로 이끌어 올리면서 마지막엔 시의  차원으로 이끌어
     주고 있는데 이를 제시해 본다.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4)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5)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의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사상을
             본다.
         (7) 나무를 흔들고 있는 바람 그 자체를 본다.
         (8) 나무를 매체로 하여 나무 저쪽에 있는 세계를 본다.
    
     이 여덟 단계의 발상차원은 언뜻 쉬운 것 같지만 전문  시인들도 해내
     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1)에서 (4)단계가지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5)에서 (8)까지 단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인으로서의 전문적이고도 고도한 시각을 지녔을 때만이 가능한 차원
     이다.
                             - 중  략 -
       (1) 나무를 그대로 나무로서 본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겠는가. 십중팔구 '나무가 서 있다.'한다든지 감
     정을 좀 섞어 넣으면 '외롭게 서 있다'든지 할 것이고  생각을 끌어 들
     인다면 '고향 마당에 서 있는 감나무 같다'고  제법 비유까지를 동원할
     것이다. 그렇다고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나무가  서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서 있다고 강조해도 서 있는 것 이상이 될  수 없기 때
     문이다. 그러나
    
         무슨 죄를 지었기에
         종일토록 벌을 서 있는가
         나무는
    
       라고 했다면 그냥 서 있는 나무가 아닌 '벌선'나무로 변용이 됐기 때
     문에 시가 될 수  있게 된다. 독자 여러분은  이 부분에서부터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첫 단계에서 긴장을 풀면 8단계에 까지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떻든 1차 단계에서는  나무를 그냥 나무로 봄으로써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작용하지 않는 그냥 육안(肉眼)의 기증만 고스
    란히 동원, 나무를 나무로서 보면 그뿐이게 된다. 그 때문에 1차단계에
     서는 사적 단계가 아닌 시적 단계 이전의 평범한 사실적  단계 이상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2차 단계에 오면 그냥 육안으로 나무를 보는 것
     이 아니라 육안의 기능 외적 기능을 동원하게 된다.  다음은 (2)단계로
     넘어가 보자
    
       (2) 나무의 종류나 모양을 본다.
       창밖에 서 있는 나무가 무슨 나무인가를  먼저 식별해야 한다. 나무
     가 무슨 나무인지 식별하는 능력은 두 가지 기능이 육안에 추가됐음을
     의미한다. 하나는 무슨 종류인지 식별하는  능력으로서의 지식이고 다
     른 하나는 경험이다. 곧 경험과 지식이  육안에 추가돼 더욱 구체적으
     로 사물을 해석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종류말고 또 모양을 보아야 하는데 모양의 경우 어떤 모양인
     가를 직접 드러내지 못하면 대부분의 경우 어떤 모양 같다고  어떤 것
     을 추가하게 되는데 이 어떤에  해당되는 것이 무엇과 견주는  비교가
     된다. 어떤 모습 곧 무엇과 같다든지  무엇과 비슷하다든지 무엇과 닮
     았다 한다든지가 추가되게 되는데 이때 앞의 경험과  직관이 맞물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모양인가를 보는 직관(直觀)에  경험이 오버랩
     됨으로써 상상력이 개입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2차 단계는 육안에 지식, 경험, 상상력이 추가되게 되는
     데 지식과 경험과 상상력이 추가되면 비유가  성립된다. 그리고 이 비
     유의 단계는 곧 시적 단계에 해당된다. 이렇게 지식이 동원되고 또 체
     험이 등원되고 상상력이 동원돼 무슨 나무인가를 알아냈다면 여기에서
     어떤 모양새를 하고  서 있는가를 추가하게  될터인데 필시 '은행나무
     한 그루가 헐벗고 서 있다'한다든지, '아카시아 나무가 앙상한 뼈만 드
     러냈다'한다든지 할 것이가. 물론 이러한 표현도 구체적 해석이기 때문
     에 시적일 수 있다. 그러나 '헐벗고'나 '앙상한 뼈'란 표현은 우리가 흔
     히 나목을 보았을 때 쓰는 비유다. 곧 누구나 쓸 수 있는 비유로서 특
     수한 것이 아닌 보편적이기 때문에 이때 비유는 비유의 효과가 없어져
     버린 사비유가 되어 시 이전의 수사학적 비유가 된다. 그래서 시가 되
     기 위해서는

         헐벋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추위에 떨며
         더운 체온을 꿈꾸고 있다.
    
         한다든지
    
         아카시아 앙상한 가지가
         오돌오돌 떨며
?
         소름을 돋혀있다.
    
       하면 제법 시적이  된다. 왜냐하면 앞의  시는 은행나무가 춥겠다는
     해석인데 그냥 '춥겠다'고 하지 않고 그 반대로 더운 체온을 꿈꾼다'고
     진술함으로써 사실을 사실보다 새로운  사실로 이동시켜 주기  때문이
     다. 그리고 뒤의 시도 잎이 다 떨어져  버린 앙상한 아카시아 숲이 가
     시만 드러내고 있는 것을 '앙상한 가지가/ 오돌오돌 떨며/ 소름이 돋혀
     있다'고 아카시아의 속성을 빌어 사실을 새로운  사실로 재구성 해 주
     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은 나무를 그대로 보지 않고 새롭게 봄
     으로써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해주는 것이 되어 시적 진술의 초보
     적인 단계에 해당되게  된다. 시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로써는
     말할 수 없는 새로운 사실의 기록이란 점을  다 알고 있는 바다. 앞의
     시행들은 비록 초보적 단계이기는하나 사실보다는 새로운  진술이란
     점에서 시적 진술이 될 수 있다.
       이쯤에서 이해가 간다면 더욱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된다. 갈수록 단
     계가 높아지고 높아질수록 어려움도 따르기 때문이다.  다음은 (3)단계
     로 넘어가 보자.
    

      
     ※ 현대시창작 3,4단계    

       (3) 나무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가를 본다.
       나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흔히  바람 때문으로 본다. 이는
     연상상상을 동원했음을 의미한다. 비하면 우산, 꽃 하면 나비, 봄 하면
꽃을 떠올리듯이 나무 하면 바람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것이 연상상
     상의 작용이다. 이는 또 시의 발상차원의  3차 단계가 단순 상상이 나
     니라 연상상상을 동원했다면 비유의 단계임을 의미한다. 곧 시는 사물
     을 그냥 보고, 본 것을 그대로 쓴다거나 어떤 종류이고 어떤 모습인가
     를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여기에 상상력을 가미, 보다 새로운 모습이
     나 의미로 태어나게 했을 때 시가 된다는 의미와 같게 된다. 왜냐하면
     본 것을 본 대로 쓴 것은 사실의 기록이고 시는 사실보다 새로운사실
     의 기록이기 ㄸ문이다. 그리고 시가 사실의  기록이 되기 위해서는 은
     유에서의 치환(置換)이 요구되고,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변용이 요구되는데 그것이 역시 은유에서의 병치(竝置)다.
       시의 발상차원의 3차 단계는 바로 치환이나 병치를 동원, 새로운 의
     미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는 단계란 뜻이  되는데 여기에 '어떻게 흔
     들리는가'를 곁들이면 천태만태가 된다. 보기에 따라서는  흔들리는 나
     무의 모습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리칼을 흩날리는 것 같기도
     하고, 또는 마치 하늘의 구름을 쓸어내는 빗질 같기도 할 것이다. 그래
     서 '나무가 춤을 추고 있구나' 한다든지 '머리칼을 흩뜨리고 있구나' 했
     다면 일단 비유는 성립되나 이 또한 흔히 쓰는 비유로서 새로운감동을
     주기에는 모자란다. 그러나 '나무가 검은 구름을 쓸어  내기 위해 빗자
     루가 되었구나'한다면 훌륭히 시가 성립된다. 분명히 아무도 쓰지 않았
     던 새로운 해석이고  변용이며 또 감동도  새로이 환기되기 때문이다.
     이를 시로써 재구성 해보자(이때의 나무는잎이 무성한 나무로 가정하
     거나 상상해서 써도 무방하다).
    
         가로수가 하늘을 빗질하고 있다.
    
         한다든지
    
         가로수가 하늘을 쓸고 있다.
    
       했다면 가로수가 하늘을 쓰는 빗자루로 변용되어 단순히  바람에 흔
     들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구름을 쓸어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어 전
     혀 다른 사물로 태어나게 된다. 전혀 다른 사물로 태어났다면 이는 곧
     변용이 되고 동시에 가로수가 아니라 빗자루로 그 의미 또한 이동되게
     되는데 이는 변용과 치환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흔히 현대시를 정의할  때 변용과 치환의  미학이라고들 말한다. 또
     현대시의 표현 기술을  말할 때 비유와  상징으로 대표된다고도 한다.
     여기에서의 비유와 상징은 곧  3차 단계에서의 변용과 치환에  해당된
     다.  그리고 이는 시의 발상차원의 3단계는  현대적 해석의 낯설게 쓰
     기에 해당되는 단계라고  해당된다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변용과
     치환은 본래의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그 모습이나 의미가 이동되기 때
     문이다. 다시 (4)단계로 넘어가 보자.
       (4) 나무의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세밀하게 본다.
       여러분은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린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에
     빠져있기 십상이다. 그러나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이 아
     니라 '나무가 손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틀렸는
     가? 그렇게 보면 ?영락없이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거꾸
     로 나무가 나무가 손을 흔들어 바람을  보내고 있다는, 거꾸로 해석한
     것이 훨씬 신선하고 새롭고재미있는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사
     실을 체험할 것이다. 그래서 고정관념에서  빠져나가야 비로소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함께 새로운 해석이 곁들여졌을  때 새로운
     감동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를 시로써 재구성
     해 보자.
    
       가지와 가지 사이
       험한길 마다않고
       도폿자락 펄럭이며 찾아온 손을
       나무들은 손을 흔들어
       전송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바람은 '손님'으로 변용되고 나뭇가지가 흔들린  사실이 손
     님을 전송한 사실로  바뀌어 새 사실이  탄생된다. 이것은 고정관념을
     깨뜨렸을 때 새로운 관념이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시는 관념을 버리고
     사물로 변용하거나 새로운 관념을 끌어냈을 때 비로소  성공적으로 형
     상화된다는 사실에 관심하기 바란다.
       더구나 '나무 잎사귀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세밀히  본다'는 것은 고
     정관념을 일탈하거나 초월하는 시력도 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흔
     히 말하는 구상화(具象化)를 요구한 것이 된다. 잘 아시다시피 현대 시
     를 일컬어 형상화 작업이라고 한다. 새  모습으로 꾸며 드러내야 한다
     는 뜻이다. 그래서 시를 회화(繪畵)라고도 하는데 이는  현대의 시각문
     명에 걸맞게 시도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눈에 보이게
     드러내란 주문이었던 것이  된다. 그것이 곧  형상화이고 이 형상화는
     곧 구상화 작업에 의존된다. 그리고 구상화되기 위해서는 세밀한 관찰
     이 더없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4단계는 이러한 현대시에 있
     어서의 형상화와 구상화의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형상화나 구상화는 본디의 것을 보다 구체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때 요구되는 것이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이다.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바람이 부니까 나뭇잎이 흔들린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흔들
     리고 '무엇처럼' 흔들리는가로 흔들리는 모습을 기존의  모습에서 새로
     운 모습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용을 해야  한다. 변용은
     기존.기성의 본디의 것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꿔내는 것을 말한다. 바꾸
     기 위해서는 의미를 이동하는 치환이나 의미를 존재로  현현하는 병치
     와 같은 수사적 기술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를 공식화하면 첫  단계인
     육안에 둘째 단계인 지식.경험을 추가하고 여기에 셋째 단계인 상상력
     을 가미하고 마지막에는 기술을 보태는 것이 된다. 곧 육안+지식.체험+
     상상력+변용의 기술이 되는데이 단계가 곧 네 번째의 발상차원에 해당
     된다.
       지금까지는 시의 발상차원의 여덟 단계  중 네 단계를 시에  실제로
     적용해 본 것이다. 여러분들도 이런 단계를  하나씩 실천해 보면 매우
     효과적 방법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나머지 부분인 (5)단계에서 (8)단계까지를 이야기할 차례다. 나
     머지 (4)단계를 제시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1)단계에서 (4)
     단계까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바람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일이었다. 즉, 나무가 나무 자체로서가 아니라 바람
     에 흔들렸을 때의 모습,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떤 모습으로 바뀌는가를
     세밀히 관찰, 재해석 내지 재구성하는 단계였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1)에서 (4)단계까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바람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는 일이었다. 즉, 나무가 나무
     자체로서가 아니라 바람에 흔들렸을 때의 모습, 바람에 흔들리면서 어
     떤 모습으로 바뀌는가를 세밀히 관찰, 재해석 내지 재구성하는 단계였
     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1)에서 (4)단계까지는 남가 그 외적인 것. 예를 들어 바람
     이라든지, 비라든지,  눈이라든지, 게절이라든지와의  상관관계를 통해
     어떻게 변하는가를 관찰하면 능히 그 변용된 모습을  재창출해낼 수가
     있게 된다. T.S.  엘리엇은 이를 客觀的  相關物의 발견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객관적 상관물이란 시인이 본래 드러내고자 한 것을 그와 관
     계가 있는 유관적 사물이나  사건을 끌어들여 구체화함으로써  본래의
     것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정서나, 새로운  분위기, 새로운 감동을
     체험하게 하는 효용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시되고  있는 현대
     시법의 하나로 즐겨 원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달이 떴다고 했을 때 밤하늘에 달 하나만  둥실하게 띄웠
     다면 단조롭기 그지없다. 그러나 늙???노송 가지에 달을 걸려 있게 한
     다면 사뭇 정취가 달라진다. 달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느낌이나 정
     황, 감동이 분명 다르게 된다. 그것은 소나무  가지가 달에 개입되었기
     때문인데 이 때 소나무는 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면서도 달에서 느
     끼는 감동을 새롭게 해주는 객관적 상관물이 된다.
       여러분들은 이 점에 주의를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시인이
     드러내고자 하는 사물만을 내세웠을 때 아무리 잘  드러내고 구체적으
     로 형상화했다 하더라도 그 사물 자체가 환기하는 감동 이상을 체험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관계가 없으면서도 상관관계로
     제2의 사물이나, 제3의 사물을 끌어들였을 때는 본래의 사물에서는 환
     기되지 않은 새로운 정서나 장면, 또는 사건이나  분위기, 새로운 감동
     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앞서 제시한 나무를 바람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동원, 구체화했을
     때 나무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제2, 제3의  새로움을 맛볼 수 있었던 것
     과 같은 이치다.
       해석을 더 곁들이면 시의  발상차원의 4단계까지는 첫째 보인  것을
     본 그대로에서 여기에 경험.비식.상상력.기술 따위를 가미시켜 더 구체
     적으로 드러내고 더 새롭게 드러내며 그리하여 새로운  모습이나 새로
     운 의미로 태어나게 함으로써 시를 성립시키는  단계란 뜻이 된다. 실
     제로 독자들은 이 단계의  적절히 이용, 첫  단계에서 4번째 단계까지
     끌어올리면 항용의 사실이 전혀 새로운 창조적 경로로  시를 성립시킨
     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나머지 단계인  제(5)단계에서 (8)단계까지를 시의 실제에
     적용해 보기로 하자. 나머지 단계를 제시하기 전에 관심을 환기해야할
     것은 제(5)단계부터는 앞의 (4)단계까지와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을 재
     해석하거나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해석해 내야 하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먼저 제
     (5)단계를 제시해보자.
   


     현대시창작 5단계 6단계
    
       (5) 나무속에 昇華하고 있는 생명력을 본다.
       나무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것은 분명히  나무가
     생명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생명력을 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이 때의 생명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시의  것이다. 마치 사과
     속에 자양소인 비타민 같은 것은 분명히 들어 있으나 보이지  않는 이
     치와 같다. 그래서 눈에 보인다면 보인  그대로 진술하면 될 터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없게 된다. 눈에 보이
     지는 않지만 분명히 생명력은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초심자들은  이런 주문에 당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드러내라는 주문이고 보면 안 보인다
     는 핑계만을 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눈에 보이게 드러내야 시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 보자.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나무의 생명력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내면적이고  정신적인 것,
     곧 우리의 생각이나 마음.사상과 같은 것들, 일테면  관념과 같은 것이
     나 우리의 가슴에 가득히 서려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정서  같은 것
     들도 다 모습을 지니지 못했기 때문에 형상으로 드러낼 수가 없다. 그
     래서 생각한 그대로
    
         사랑이여
         끝끝내 지워지지 않는
         사랑이여
    
       한다든지, 또는 느낀 그대로
    
         오, 가슴 아픈 사랑이여
         끝끝내 채워지지도
         채울 수도 없는 사랑이여
    
       했다면 생각한 대로 느낀 대로는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앞서도 지
     적했듯이 생각한 것을, 느낀 것을 구체화, 형상화하라는 주문이니 모양
     새로 드러낼 수밖에 없지 않겠는다. 그래서
   
         썼다 지우고
         지웠다 쓴
         이름 하나.
    
         이름 대신
         말갛게 가슴만
         닳아버렸다.
    
         상금도 버리지 못한
         보석보다 귀한
         지우개 하나
    
       했다면 사랑이 지우개라는 사물로 변용됨으로써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화를 담당하게 된다. 곧 눈으로 볼  수 없는 관념으로서의 사랑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물의 이미지를 빌어 형상화됐다는 뜻이 된다. 정
     서의 경우도 같은 이치다.
    
   열아홉 난 계집애의
         시장끼
         꽃피는 날엔
         춘궁기의 배고픔을
         배 아닌 가슴으로 앓았다.
    
?       고 했다면 사랑의  결핍이라는 정서적 해석이  '열아홉 난 계집애의
     가슴으로 앓는 시장끼'로  구상화됨으로써 가슴으로  해석하는 사랑의
     정서가 사물로 대체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나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것은 나무 속에 승화하고 있는  생명력을 눈에 보이는 사물
     오 대체, 형상으로 드러내면 되기 때문이다.
    
         수술로는
         절개해 낼 수 없는
         종양
         욋과병원 창들이
         가지들의 터진 살갗으로
         피빛 얼룩을 문신처럼 새기고 있다.
    
       이렇게 썼다면 문명의 힘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순수  무구한 자연
     의 생명력으로서의 개화를 드러내게 되는데 이때의 개화는  곧 나무의
     생명력의 표출이고 또 이 생명력의 표출로서의 모든  개화는 생명력의
     승화에 해당된다. 이렇게 되면 나무의 생명력과 승화는 개화라는 가시
     적 형상화로 충분히 드러낼 수 있게 되는데 정신적이며 형상적인 것까
     지도 눈으로 볼 수 있게 회화화하라는 주문이란 걸 말해주는  것이 된
     다. 그리고 우리는 이 주문에 응답하기 위하여 내면적이고도 정신적이
     며 형이상적인 것을 드러내기에 알맞는 사물을 발견, 이로써 형상화하
     면 되는 것이다. 이른바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의 발견이나 견자시학
     에의 의존이라고 할 수 있다.
       견자는 일찍이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인 랭보의 말이다. 시
     인은 발견자여야 한다는 뜻으로 한 이 말 속엔 찻째 시인은 눈에 보이
     는 것을 보는 시각의 소유자가  아니라, 남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하고 둘째로는 드러나지 않고 가려진  부분까지를 발
     견해 낼 줄 아는 사람이여야 한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그리고 셋째로
     는 꼭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을  견자라고 했는데 앞
     의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나무의 생명력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드러내
     주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가지들의 터진 살갗은 개화
     를 뜻하고 개화는 나무의 생명력의 승화를  의미한다. 곧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되고 그 때문에 견자적 시각을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인 여섯 번째 단계로 넘어가 보자.
    
       (6) 나무의 모습과 생명력과 상관관계에서 생기는 나무의 思想을 본
     다.
       나무의 사상도 생명력과 같이 불가시의 형이상적인 것이다. 그 때문
     에 항용의 시각엔 포착되지도, 포착할 수도 없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발견해 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당초 나무의 사상은 없기 눈에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드러낼 수 없다는뜻이다.
       부득이 사상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시인 쪽에서 사상을  만들어 집어
     넣든지 끄집어내어 보여주든지, 그렇게  꾸밀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를
     시로써 실제화해 보자.
    
         나무는
         하늘과 손을 맞잡고자
         종일 발돋움하며
         팔을 내뻗고 있었다.
    
       나무가 하늘과 손을  맞잡고자 발돋움한 것은  구원의 시사가 된다.
     그것은 하늘이 久遠의 세계이자 구원(救援)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구원
     은 영원한 삶의 추구이고 그럼으로써 소멸로부터 초월하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나무는 상승지향 이미지를 대표하는 원형상징의 표상으로
     서 인간이 구원받기를 희망한 것이나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보는 것이
     다. 나무가 구원받기를 희망하고 또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다. 다만
     시인 쪽에서 그런 의미를 부여했을 뿐인  것이다. 여기서 독자는 그렇
     다면 사상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불어 넣어 준  것이 아니냐
     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를 통해 구원을 시사한 것을 발
     견해 냈을 때만 이 나무의 궁극적 사상은 성립되므로 이는  곧 나무의
     사상을 발견한 것이 된다. 곧 나무를 나무로서만 본 것이 아니고 나무
     의 원형상징을 빌어 상승지향 이미지로서의 나무가 구원의 표상이라는
     또 다른 모습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곧  사물을 사물로서만 해석하지
     말고 초월된 모습까지를 포착하고  또 드러나지 않는  내면세계까지도
     투시, 새로움을 발견해 냄으로써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흔히 시를 논리를 초월하거나 논리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시의 6단계는 바로 논리의 초월적 단계 내지는 논리가  끝나는 곳에서
     성립되는 또 다른 논리를 성립시킨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인 일곱
     째 차원으로 넘어가 보자.
    
    
    

     현대시와 비유
    
       시의 표현은 뭐니뭐니 해도 비유의 양식과 상징의 양식으로 대표 ?된
     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현대시는 그러하다. 현대시가  비유와 상징을
     표현양식의 대표적 수단으로 동원하는 것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를 몇가지 측면으로 제시, 구명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하나는 전장에서 밝힌 바 있듯이 현대시가 체험에서  출발했기 때문
     이다. 체험의 경험 대상물인 사물의 그림을 마음 속에 인화, 模像을 성
     립시키고 이를 재현해 내는 과정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투명하게 드러
     내기 위해서 模像에 연계되는 연상상상을 동원하게 되는데  이때 연상
     상으로 이끌어 내는 체험 대상물과 원모상과는 비교를 성립시킴으로써
     필연적으로 비유를 성립시킬 수밖에 없게 된다. 고로 이를 등식화하면
     체험-이미지-상상력-비유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게 된다.
     또 다른 하나는 현대시가 객관적인 시각을 중시하는  과학주의적 태
     도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현대시는 그것이 정서였건, 관념이었건
     사상이었건, 의식 내지 심리적 작용이었건, 이를 드러냄에 있어서는 내
     면계에서 外界로 객관화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정신적 내면계를 밖으
     로 드러내 客觀化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내면적이고도 정신적인  것을
     物化해야 하는데 이때 物化의 대상으로 事物을 모방하게 되고, 사물의
     모방은 필연적으로 이미지에 의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客觀的
     相關物의 동원도 따지고 보면 이 원리에 해당된다.
       셋째로는 適合의 쾌감과 발견의 쾌감이라는 심리적이고도 정신적 활
     동의 범위 확장을 추구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전래적인 효과적 표현 양
     식의 답습을 들 수 있다. 일찍이 詩傳에서도 비유로써 그 情을 달하게
     되니 글을 쓰는데 있어서 비유가 없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비유가 시의 표현양식을 대표했던 전통적 표현술이었음을 의미했
     던 것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넷째로는 同一性의 추구라는 현대적 分化 및 核化와도  관련지어 볼
     수 있다. 현대는 과학문명으로 대표되고 또 과학문명의 지배원리로 작
     용하는 시대다. 과학은 문명을 진취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는
     근원적 힘이자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거꾸로 보면  과학은 자연을
     부단히 해체 屬이나 種따위로 분류시켜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멀리 떼
     어놓았다. 그 때문에  현대인은 단절과 소외의  틈새를 메우지 못하고
     단독자로 전락, 존재에 따르는 고독과 불안, 절망과 좌절이라는 위기를
     체험하고 있다는 진단은 오류가 아니다. 이러한 소외의식은 급기야 나
     와 세계와의 단절, 나와 자연과의 단절, 심지어는  나와 나와의 分裂까
     지를 체험하는 극단적 고독을 안겨 주었고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죽음
     에 이르는 병으로까지 진단한 바 있다.  여기에서 인간은 동일성을 추
     구하게 되고 또 발견하고자 부단히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동일성의 발견은 무엇인가를 상실했을 때 좌절된 욕구의  한 보상심
     리에서 연유한다. 인간의 욕구는 상실해 버린  것을 그와 유사한 代理
     對象을 소유함으로써 보상  받고자 하는 심리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원래 소유하고 싶었던 目的物 대신 그와 유사한 것을 소유함으로써 만
     족하고자  하는   고상한  취미가   있는데  프로이트는   이를  轉移
     (transference)로 규정한 바 있다.
       이러한 심적 정신역동을 다름 아닌 예술창조의 에너지활동의 분배원
     리로 보는데 이것이 곧 同一性의 추구다.  이러한 이치는 원래의 것을
     그와 유사한 代理對象을 빌어  드러냄으로써 만족하고자 하는  비유의
     원리와도 같은 것으로서 비유가  시의 표현방식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는 곧 예술창조의 근원적 힘이  되기에 이르다. 이러한 이치는
     비유의 어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유라는 말의 metaphor는 그리스
     어 metapherein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mata 즉 넘어서다. 초월하다의 over, beyond와 이동하다, 가
     져오다의 pherein(bring, carring)의 합성어다. 그러므로 metaphor는 옮
     겨 바꾸는 이동 및 變化, 變容의 뜻을 지닌 轉移가 되고 이것이 곧 비
     유의 원리와 합치한다는 점에서 심리학적  견해를 곁들일 수 있게  된
     다.
       노드롬 프라이는 이를 지적, 문학 그  자체는 우리의 정신과 사물을
     연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언어를 사용하며 정신과 사물을 연결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미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된다.
     이렇게 비유의 동기는 인간의  마음과 외부세계를 결합하고  마침내는
     同一化가 되고 싶어하는 욕구인 것이라고 비유를 인간의  한 욕구충족
     의 정신적 수단으로 해석??歐竪?한다.
       물론 이러한 견해들은 현대시에만 적용되는 비유의 요구조건은 아니
     다. 일찍이 시는 비유에 그 표현이 의탁되어 왔다는 점에서 보면 비유
     는 곧 시의 존재의 성립조건, 나아가서 존재양식 자체였다고 할 수 있
     다. 다만 현대시가 비유를 보다 철저하고도 절대적으로 요구한다는 점
     은 이상의 몇 가지 측면적  지원을 받아 해명될 수 있을  것이란 점이
     다. 이쯤에서 비유의 성립조건을 살펴보기로 하자.
    

    
1. 비유의 성립조건
    
       비유의 정신적이고도 심리적이며 미학적 근거는  앞에서 제시했듯이
     여러 측면에서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유는 어떤 경로로 성립되
     는가 하는 비유의 성립조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비유를 창조적 원리로 보면서 이것은 우리
     가 남에게서 배울 수  없는 한 가지 일이며,  이것이 天才의 표시라고
     그의 시학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 말 속엔 비유가 새로움을 창조한다
     는 창조적 천재성을 비유에서 찾았던 데서 연유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비유는 보다 더 잘 표현하려는 강렬한  표현욕구를 충족시키
     기 위한 한 수사적 수단이다. 그  때문에 표현욕구가 강렬하면 강렬할
     수록 비유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로써  보면 비유의 천재성은
     창조적 독창성 보다는 얼마만큼 표현의 욕구가 강렬하느냐에  따라 결
     정지어질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적 표현욕
     구가 강렬하다고 해도 그 배경에는 사회적 관습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비유의  성립에는
     그 사회의 관습.풍속.사고방식 들이 전제가 되고 그것이 비유를 성립시
     키는 源泉이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조선조의  시조 '가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성난 가마귀 흰빛을 세우나니/청파에 조이 씻은
     몸 더렵힐까 하노라'고 했을  때 시행 '가마귀  싸우는 골'에는 조선조
     사색당파를빗대어 쓴 비유적 상징인 것이고, '성난 가마귀 흰빛을 세우
     나니'는 이러한 당쟁에 더럽히지 않는 순결과 순수의  비유가 된다. 그
     리고 3장은 결코 세파나 세태의 더러움에 젖을 수 없다는 청결한 정신
     을 빗대이는 비유이다.  이는 조선조 당쟁으로  악순환을 되풀이 했던
     정쟁 속에서 때묻지 않는 충절을  지키고자 한 당대 군주전제  정치의
     질서.윤리가 배경으로 작용, 비유의 원천으로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이
     는 단적으로 비유를 성립시키는 것은  그 시대.사회.제도.윤리 등이 작
     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천으로서의 비유의 성립조
     건은 비유성립의 배경으로 작용이라 할 수 있어 간접적 조건의 하나라
     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보다 직접적 성립조건인 수사기법을 중
     심으로 논의해 보기로 한다.
       비유의 첫째 조건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원
     관념은 本義.趣意.主想이라고도 달리 표현하고  보조관념을 喩義라고도
     한다. 명명이야 어떻게 했건 비유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첫째 비교하
     고자 하는 두 가지 의미의 비교가 있어야 한다. 구체적인 해석을 곁들
     이면 시인이 본래 표현하고자 한 본래의 것,  그것이 꽃이건 나무이건,
     계절이건, 혹은 사랑이건, 그리움이건 간에 그것을 보다 정확하게 전달
     하고 아름답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이와 유사하거나  성질이
     같거나 의미의 공통점이 있거나 하는 것들을 끌어들이는 또 하나의 관
     념을 동원하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전자를 원관념이라 하고 후자를 보
     조 관념이라 한다. 이때 전자를 本義(tenor),  후자를 喩義(vehiele)라고
     달리 명명했던 것은 I.A.  리처드였다. 한편의 시를 예로 들어 이 경우
     를 밝혀 보기로 하자.
    
         3월의 이불 속으로 지열의 육신이 돌아 눕는다.
         여자들이 누워서 생명을 받아들이듯이
         들은 하늘을 껴안고 길게 흐느끼며
         똑바로 눕는다.
   별들이 일어서고 이슬은 내려와 쌓인다.
         어느날 포근한 음모의 이랑을 열고
         끈적거리는 섭리를 빨아먹고 있을 때
         껍질이 부서지는 아픔을 느끼며
         당신의 품속에서 칭얼거리던 나의씨앗,
         입술이 고운 아기
         들은 부끄러운 옷깃을 품고 흙의 젖꼭지를 물어준다.
                        -김용오의 '들' 일부
    
       이 시에서 원관념은 들이고 들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동원한 보조
     관념은 의인화 된 모성이다. 곧 들을 설득력 있게 드러내기 위해서 들
     을? 대신 말해 줄 수 있는 모정의  이미지를 동원, 하늘과 땅의 관계를
     陰陽의 조화로운 관계로 설정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시어 '이불' '눕는
     다', '생명을 받아들이듯', '껴안고',  '陰毛', '껍질이 부서지는 아픔',  '아
     기', '젖꼭지', 등은 여성을 상징하는  곧 모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
     한 보조관념 구실을 담당하게 된다.
       곧 들을 모태로 보면서 들인 大地와 하늘의 교접을 통해  생명을 탄
     생시키는 자연의 섭리를 구체화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원관념인  들은
    생명탄생이라는 원형상징을 구체화하기 위해 성적 이미지인 여성 상징
     물들을 보조관념으로 동원, 구체화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  때문에
     이 시에서의 本義는 들이고 보조관념인 喩義는 여성으로서의 모태다.
       이로써 볼 수 있듯이 비유의 1차적 성립조건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있어야 하고 이들 사이에는 유사성이나 연계성이 개입돼  本義에서 喩
     義로 옮겨지는 轉移, 즉 同一性의 발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두 번째
     의 성립조건에 오면 첫 조건에 위배된 본의와 유의의 이질성을 성립조
     건으로 한다.
       비유의 둘째 조건은 본의와 유의가 이질적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이
     질적이라 함은 삶과 죽음, 선과 악, 불과 물같이 서로  그 종류를 달리
     하거나, 相衝된 성질을 가졌거나, 서로 相反되는 것을 의미한다.
       서루 相反되거나 相衝되는 이질적인 것을 결합하고자 할  때 필연적
     으로 서로 거부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부득이 이  두 대립.
     갈등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폭력적으로  연결시틸 수밖에 없게  되는데
     엘리엇은 이를 지적 '폭력적 결합'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폭력적 결합이
     이루어지면 첫째는 긴장이 유지되고 이 긴장의 균형에 의해 상반의 균
     형이라는 아이러니를 성립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상반의 균형이란 이질적 요소가 결합됨으로써 팽팽히 끌고
     당기는 팽창감의 긴장유지를 의미한다. 이때의 긴장이 다름 아닌 현대
     시가 새로이 요구했던 리듬이고, 이 리듬에  의해 단단한 결구력이 형
     성되고 유지돼 시의 탄력을 배가 시킨다.  비유의 첫째 성립조건인 同
     一性만은 유지한다면 '남자같은 남자'나 '꽃 같은 꽃'에서 볼 수 있듯이
     비유가 성립되고도 긴장이 빠져나가 풀어지고 비유의 효과는 死比喩에
     머물고 만다. 그러나  '바위같은 남자'나 '꽃러럼  붉은 울음'했을 때의
     비유는 다같이 직유를 성립시키면서도 탄력과 긴장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바위'와  '남자'는 서로 이질적 사물의 결합이고
     '꽃"과 '울음'은 서로 相衝되는 이질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곧 이
     질적 상충이 맞물린 相反의 대립을 유지하고 대립은 동시에 긴장의 요
     인으로 작용한다.그러나 '바위같이 침묵을 지키는 과묵한 남성다움'이
     나 '바위같이 굳건하고 자잘한 일에 꼼짝도 하지 않는 그런 가슴이 큰
     남자'로 남자의 성격이나 성질을 바위에 전이시켰다고 보았을 때는 훌
     륭히 이질 속의 相反의 平衡이 성립되기에  이른다. 한편의 시를 例示
     했을 때 이해에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갑시다, 당신과 나와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노을이 하늘에 퍼지거든 우리 갑시다.
    
       이 시는 엘리엇의 'J.A.프루프록의 연가'의 일부다. 여기에서 원관념
     은 '저녁노을'이고 보조관념은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이
     다. '저녁노을'은 한마디로 黃昏을 의미하는 황금빛으로 채색된 저녘녘
     의 紫雲이 피어 있는 대안으로서의 풍경이다.  시인은 이를 보다 구체
     적이고 설득력 있게  드러내기 위해서 '수술대  위에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의 몽롱하고도 환상적인 마취된 의식의 상태를 빌어 비유를 성립
     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전자인 '노을'이라는  외적 풍경과 '에
     테르로마취된 환자'의  내면적 의식세계 풍경과는  서로 다른 상반된
     풍경인 것이다. 그  때문에 선뜻 설득당하기를  거부하는 저항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外的풍경과  內的풍경은 서로 다른
     이질적이고도 상반된 풍경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유사성과 연관성이 개
     제하고 있기 때문에 비유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비유의 세번째 성립조건인 이질 속의 동질성 발견이다. 이질
     성 속의 동질성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사물, 즉 비유의 1차적 성립조건
     인 원관념과보조관념 사이에 서로 잇대이고 연관시킬 수 있는 동질성
     내지 유사 및 관련성이 있어야 하고 또 그래야만 轉移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두 가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앞의 시에서 '노을'과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사이에는 어떤
     연관성, 동질성이 있어 전이가 가능했던 것일까.  먼저 '노을'부터 해석
     해 보자. '노을'은 일종의 가시적인 현상의 일몰 풍경이다. 그래서 감각
     적으로는 자운의 아름다운 채색성을 통해 미적 감동을  환기시키기 마
     련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도 얼마 뒤면  소멸해 버려 어둠으로 사라
     져 버리게 된다. 이때의 정서적 환기는  아름다움 뒤에 비감이 동반되
     어 두 개의 정서가 오버랩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정서적 해석과는 달
     리 노을을 斜陽意識에 빗대어  저물어 가는 時代意識으로  전이시켰을
     때 해석은 사뭇 달라지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斜陽은 빛이 기울어 일몰현상이나 이 현상을 은유
     적으로 사용하여 정신적 사양의식, 즉 정신적 가치관의 몰락이나 退行
     의 정신현상으로 사양의식을 전이시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20세기는
     주지하다시피 물질만능사상이 지배원리로 작용, 정신적 가치가 소멸됐
     거나 그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게  知的 진단이다. 고로 '노을'이라는 사
     양의식을 정신적 목락의식인 '내면적 사양'으로 이동시켜  은유를 성립
     시킬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인데 이때의 경우도 앞의 경우와 같이
     단순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는  환자가 아니고 물질에 오염되어  버린
     시대적이고도 정신적 환자,  즉 에테르에  마취됨으로써 정신적이고도
     의식적 혼미를 거듭하는 정신적 혼미성 내지 불투명성으로  은유적 해
     석을 성립시킬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노을'과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는  20세기의 병든 가치
     관, 마취된 정신 등으로 시대적 정신  풍경과 맞물리는 암시역이 설정
     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현상학적 풍경으로서의 '노을'과 내면적 의
     식 풍경으로서의 '마취된 환자'는 시대적  충경, 시재적 정신풍경과 유
     사 내지 관련성을 지니게 된다.
       이상과 같이 비유는 첫째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선행돼야  하고 둘째
     이 둘 사이에는 유사 연결고리가  놓여져야 하고 셋째 서로  이질적인
     상반이나 相衝 속의 균형이 유지되었을 때 성립된다는  성립조건을 세
     가지로 제시할수 있다. 사려 깊은 독자는  이점 충분히 이해했을 것으
     로 본다. 다름으론 비유의 종류를 살펴볼 차례다.
    
            
    

       2. 비유의 종류
       비유의 종류는 여러 경로로 구분 지을 수 있다. 크게는 二分法을 적
     용, 선명한 아름다움을 주기 위해 꾸미는  裝飾的 비유와 황홀한 아름
     다움을 주기 위해 꾸미는  照明的 비유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비유의 조직을  중심으로 音的 비유,  감각적 비유로 구분하기도
     하고 말의 비유,  思考의 비유로도 구분하며  文彩에 따라서는 인접의
     비유, 상상의 비유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류는 세밀하게 나누면
     무려 1백 50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대표적인 양식으로
     는 直喩와 隱喩로 二分法을 적용하는 것이  통례다. 먼저 直喩부터 살
     펴보자.
      
       (1) 直喩
       한 마디로 지적해 직유는 두 가지사물, 또는 의미를 '같이', '처럼',
     '듯이', '만큼', '같은' 등의 연결어로 결합하여  표현하는 수사법의 한가
     지다. 영어에서는 as, so, like 등이  연결어로 쓰이는데 연결어가 없는
     은유보다는 분명하나 직접적이어서  그만큼 비유의  밀도는 빈약하다.
     그러나 밀도의 빈약과는 달리 事像을 선명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강의
     적 효과를 지니고 있고 그 때문에 明喩라고도 한다.
       직유를 다시 세분하면 사상을 선명히 드러낼 것을 목적으로 하는 記
     述的 直喩와 事像이 주는 인상을  강조하기 위해 쓰는 强意的  直喩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세분하면 기술적 직유는 單一직유
     와 확충비유로, 강의적 직유는 달리 속담직유로 달리 명명되기도 한다.
       분야야 어떻든 직유를 3단계로 구분함으로써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
     떤 인과관계를 맺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활용되어야 할 것인가를 제
     시해 보기로 한다.
    
       1단계:원관념과 보조관념이 한 단어인 채 연결어로 결합되는 직유.
        예:말뚝 같은 사나이, 반달 같은 눈썹, 석류속 같은 입술등.
    
       2단계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연결어에  의하여 구체적인 한  문장으로
     되는 직유
        예: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나비날개 같이  흩날리는 하얀
     눈송이, 비둘기장 가이 하이얀 요양원등
    
       3단계: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하나의 구체적인 영상이거나 아니면 한
     연으로 이루어지는 직유.
        예:내 마음에 어리우는 티끌과
           속잎 없는 눈물이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은 이슬 같은 보람을
           보일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이상 직유의 3단계에서 볼 수 있듯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다만 한
     단어로 연결되는 것에서 문장인 한 행으로, 한 행에서 한 연으로 확장
     됨으로써 외형상의 확장뿐 아니라 1단계의 순간적.직정적 수법에서 구
     체적 수법으로 장면이나 분위기 나아가서 의미의 확충까지를 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시에 즐겨 쓰는 비유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
     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석이 요구된다. 이에 대한 해답은 앞의 비유의
     성립조건에서 제시했듯이 동질성의 발견 보다 이질 속의  동질성을 발
     견하는데 있을 것으로 보아진다.
    
       예를 들면 '헤들라이트처럼 불 밝힌 암코양이'했을 때 직유는 훌륭히
     성립된다. 그러나 이때의 비유는 단지 事像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기술적 직유로서 단순 비유에 해당된다. 그러나 '헤들라이트처럼 불 밝
     혀 으르렁대는 암코양이'했을 때는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의 유사성 동
     원만이 아닌 청각적 이미지까지를 첨가시키고 있어 훨씬  구체적 기술
     이 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유를  외형적 비유 속에 내재한 암
     시적이고도 상징적 의미로까지 전의되었을 때 직유의  1차적이고도 단
     순한 한계가 극복된다는 사실이다. 한 편의  시를 제시했을 때 이해에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잎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卞榮魯의 시 '논개'의 첫 연이다.  이 시는 연결조사 '보다'로 일관된
     철저히 직유로 성립된 시다. 일종의 단순 직유랄까,  事像의 효과적 진
     술을 위해 동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外形上 그렇다는 이야기이
     고 그 뒤에 가려진 의미의  轉移에서 보면 높은 암시역이나  상징역을
     설정하고 있어 사물의 투명한 이미지로 轉移와 함께 강의적 의미의 확
     장을 볼 수 있게 한다.
       특히 '거룩한 분노'를  '종교보다 깊다'고 진술한  역설구조는 비유를
     통한 相反의 均衡이라 할 수 있는 아이러니의 효과까지를 획득하고 있
     다. 그런가 하면 '아! 강낭콩 꽃잎보다 더 푸른/그 물결/은 외형상의 비
     유가 아니라 한 번도 단절됨이 없이 도도히 흘러내리는 강물
       처럼 이어져 내려온 靑史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비유 속에 설정한 암
     시역이 되고 있다. 그리고 '양귀비 보다 더 붉은/그 마음은' 또한  외형
     상의 비유가 아닌 논개의 붉은 정절,  즉 애국심이나 애국혼을 상징하
     는 것으로서 의미의 전환이나 이동을 통한 轉移를  훌륭히 성립시키고
     있다.
       이상의 지적에서 알 수 있듯이 직유는 단순한 유사성의 비교가 아니
     라 이질적 요소의 결합,  즉 相反 속의 균형을  획득했을 때 돋보이게
     되는데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점에 충분히 접근했을 것으로  여겨진
     다. 다음은 은유의 양식으로 장을 옮겨 보자

 

 



출처 : 너에게 편지를
글쓴이 : 동산마술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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