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착상은 어떻게 하는가
유성에서 조치원으로 가는 어느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그루 늙은 나무를 만났다.
수도승일까, 묵중하게 서 있었다.
다음날 조치원에서 공주로 가는 어느 가난한 마을 어귀에 그들은 떼를 지어 몰려 있었다.
멍청하게 몰려 있는 그들은 어설픈 과객일까, 몹시 추워 보였다.
공주에서 온양으로 우회하는 어느 산마루에 그들은 멀리 서 있었다.
하는 문을 지키는 파수병일까, 외로와 보였다.
온양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내 안에 뿌리를 펴고 있었다.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
그후로 나는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 나무를 기르게 되었다.
- 박목월. 나무
매우 산문적이고 일상적인 어투로 쓰여진 이 詩는 시상을 착상한 후 그 詩가
점점 한편의 완성된 서정시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눈에 보듯 선연하게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이 시상의 계기는 산문에 대한 시인의 관찰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관찰은 지나치게 예리하거나 논리적인 고찰보다는 시인이 사물을 보는 선한 태도에서 비롯한다.
나무를 바라보다가 문득 추울 것이라 느낀다.
시인의 이러한 자연과의 교감은 이내 발전하여 나무를 늙은 수도승과
어설픈 과객과 동일시하게 되며 지상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서 있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간 존재의 초월성을 읽어낸다.
'하늘 문을 지키는 파수병'이 그것이다.
'아아 고독한 모습' 이라는 매우 진부한 표현도 이러한 詩적 계시의 순간을 통과하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원래 에피파니는 동방의 세 박사의 베들레헴 내방을 상징하는 예수의 공헌을 뜻하며,
비유적으로는 어떤 사물이나 본질에 대한 뜩박의 통찰이나 발전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위의 詩에서 시인은 나와 나무의 일체감을 '놀랍게도' 라고 말한다.
그 놀라운 일체감이 바로 詩정신이 아닐까,
'묵중한 그들의, 침울한 그들의, 아아 고독한 모습'이 詩적 화자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
'뽑아낼 수 없는 몇 그루 나무' 곧 그의 인격이 된 것이다.
이처럼 詩의 소재와 에피파니의 순간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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