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동행에 동참하며
최의상
암 투병 생존 시집 소설가 정병국의 <새 생명의 동행> 한 권을 받았다. 표지를 한 참 바라 보았다. 12년 간 암과 겨루어 이겼기에 현재 실존의 인물로 남았다는 절체절명의 죽음이 아니라고 선언을 하였다. 정병국 작가의 사진을 보며 일명 사냥꾼모자로 베레모와 함께 예술가 모자로 손꼽히는 중후한 분위기를 풍기는 헌팅캡인 모자를 쓴 모습이 인생의 달관된 얼굴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였다.
표지 위에 쪽지로 첨부된 글의 내용은 [암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6종류 중증암환자인 저를 내세워 쓴 졸작이지만, 감히 보내 드립니다.] 시집 제목에 [동행]이란 말과 어울리는 권고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암 환자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보.약.남.(보험약관 읽어주는 남자)이란 분의 이야기를 빌리면 29명당 1명은 암환자로 우리나라 암환자 수는 약 174만명(2017년1월1일 기준)으로 남자는 33명당 1명. 여자는 26명당 1명(자료: 국립암센터)이라는 통계가 있다. 3년 전 이야기로 지금은 더 많은 수치로 기록될 수도 있다고 본다.
나도 위암초기로 수술 받고 항암치료는 안 받고 x-ray. ct. pct. mri 촬영과 피검사를 받으며 5년간 관찰을 해 오다가 2018년4월14일 아주대병원서 완치 판정을 받아 지금에 이른 나이기에 이 시집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 작가는 완치 판정을 받고도 재발되어 다시 수술을 받고 지옥의 독약 같은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12년간의 질고의 고통을 감내해온 쇠심줄 같은 인내는 어디서 나온 고집인가 하니, 나탈리 골드버그 저서 <뼈 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는 책이 생각난다. “뼈 속까지 내려가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내라!” 내면의 목소리로 외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정 작가는 터득한 것이다.
생각하며 127편의 시를 이틀 만에 완독을 하고 난 후 나는 내용상으로 볼 때 127권의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시 마다 숨겨진 인생역정이 있고 고통과 절망이 있는가 하면 반전이 있고 희망이 있다. 에드거 앨런 포는 시란 아름다움의 운율적 창조라는 멋을 살리면서 매슈 아놀드처럼 시는 인생의 비평임을 잘 표현한 시들이라고 보았다. 시이기에 정 작가는 절규하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주고, 사랑을 배워가며 사랑하고, 또 절망하며 나락으로 빠지기도 하며 소명처럼 이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2008년 1월 9일 오후
입원 수속의 가슴은 공황(恐慌)
직원의 목소리가 아득한 메아리였다
12일 장기이식과 주치의
췌장과 갑상선샘 두 곳의 암 중
어디부터 먼저 수술할지 협의 중이라는 회진 설명
그 순간
천길만길 벼랑으로 떨어졌다
아 이렇게 끝나는구나
어차피 죽을 거
두 번씩 고통 받을 거 없다는 절망에
동시 수술을 요청했다
15일 오전 6시 반
수술을 앞둔 초로(初老)
암보다 더 큰 아픔의 절망에
수술실의 마취 순간까지 진저리쳤다
췌장과 갑상선샘 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목숨
소설가 정병국 시집<새 생명의 동행-아 이렇게 인생이>
2008년 1월 9일 이전에 불안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9일 이후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6일간은 작가 정병국의 인생이 전부 조명되는 시간이다. 인생이 흔들리고 불안하고 생사를 넘나들며 희비가 교차되는 시간이다. 당사자의 의지에 의하여 의연할 수도 있고 표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심에서는 충돌의 대변혁이 이루어질 것이다. “입원 수속의 가슴은 공황(恐慌)” 공황이란 극심한 불안 발작 상태를 말한다. 직접 당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수술대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은 이 느낌을 이해한다.
4연에서 “어차피 죽을 거”라 하였다. 거짓말이다. 살겠다는 반의어다. 다만 고통을 두 번 당하기 싫으니 두 고통을 단 번에 당하고 살겠다는 의지가 강철같이 심어진 시구다. 우리가 윳을 던지며 ‘도’ 아니면 ‘모’라고 하면서 내심으로는 ‘모’가 나기를 바란다. 마찬가지로 “동시 수술을 요청했다.”고 한 것은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살 의지가 철두철미한 증거다. 그러기에 작가 정병국은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다.
이 한 편의 시는 역사성이 있다. 과정이 있다. 2008년 1월 9일 이전부터 이야기는 시작되고
12일 각종 검사결과 수술과정이 결정되며 15일 수술실로 들어간다. 수술이 끝나고 마취의 멍멍한 시간이 멎고 새로운 정신세계로 진입하였다. 이 긴 역사성을 시라는 장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 편의 시를 펼치면 단편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 있다고 생각 된다. 이 시를 이해하는 것은 특히 암 환자들이 읽었을 때 동병상련(同病相憐)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한 편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많은 암 환우들이 읽고 새로운 빛으로 나아가는 생명의 동행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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