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 전 잊혀진 왕도 백제를 찾아서..
충남 공주기행
시간은 늘 빠르게, 빠르게만 간다. 그래서 여행(기행)만은 누구나에게 더 느리게, 느리게 하고 싶어진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간마저 느리게 간다는 착각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보고 들으려 할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되는 것처럼 지난 시간들을 곱씹어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이 조금씩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스로에게 순수하게 바치는 '쉼'이 되는 여행, 지친 마음을 달래고 새로운 힘을 만끽하기 위해 파랑새문화회 주관으로 지난 6월 8일 제28차 역사문화탐방지 충남공주를 다녀왔다.
아침 7시 부산을 출발하여 4시간 뒤 충남공주에 도착했다. 이번 기행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신청자가 많아 45인승 관광버스를 꽉 채웠다. 이번 기행은 공주국립박물관~공산성~무녕왕릉~마곡사의 역사와 문화의 체취를 느끼는 것. 이번 기행에도 여천 김도용교수님의 해박한 답사지 해설과 우사 박현진선생님의 마곡사 대웅전 주련 등에 대한 설명으로 기행의 묘미를 더했다.
공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계룡산이다. 예로부터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는 곳으로 잘 알려졌다. 그런 장소들은 사색하기 좋은 고요하고 평안한 곳으로도 통한다. 걷다 보면 삶의 온갖 소용돌이 속에 들떠 있던 기운이 차분히 내려앉고 더불어 산과 숲에서 오는 좋은 기운을 받는다.
한편, 공주의 옛 이름은 `웅진(熊津)`, 한글로 하면 `곰나루`다. `곰나루`라는 이름에는 `옛날 금강변 연미산에 살던 암놈 곰이 나무꾼(총각)을 붙잡아다가 굴에 가둬놓고 살면서 자식을 둘 낳았는데, 어느 날 이 남자가 강을 건너 도망가자 곰이 자식을 안고 금강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인간 세상을 동경하던 연미산의 곰이 여인네로 변신해 길 잃은 나무꾼과 아들딸 낳고 잘 살다가 나무꾼이 마을로 돌아가 버리자 슬픔을 이기지 못해 금강에 몸을 던졌다는 슬픈 전설이 서린 고마나루에서 공주보까지 이어진 강변길은 산책하기에 제격이 아닐까 싶다.
공주는 문주왕 원년(475년)부터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을 거쳐 성왕 16년(538년)까지 5대 64년간 백제의 수도였다. 공주에서는 백제의 역사와 수려했던 문화를 접할 수 있다. 그럼 역사학자 여천 김도용교수님의 답사지 설명과 여러 가지 자료를 참고로 하여 공주기행의 소회를 남긴다. 또한 번잡한 일상을 떠나 높아진 하늘과 투명해진 바람결에서 호젓함을 느끼고 싶다면 백제 고도 공주기행을 추천해 본다.
웅진백제를 주제로 한 테마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
국립공주박물관은 웅진시대의 공주를 둘러보기 전에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이다. 박물관은 무령왕릉실과 충남의 고대문화실, 옥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령왕릉실에는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4,600여 점의 유물 가운데 석수와 묘지석, 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과 귀걸이, 뒤꽂이, 팔찌 등 다양한 진품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유물들을 그냥 훑어보지 말고 유물에 새겨진 화려한 문양도 찬찬히 들여다보자.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말이 가슴속에 찬찬히 다가온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웅진백제시대의 문화를 주제로 한 테마박물관이자 지역박물관이다. 무령왕릉실,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 야외전시장 등 3개의 상설전시공간과 1개의 특별전시실을 운영하고 있다.
`무령왕릉실`은 삼국시대의 왕릉 중 유일하게 무덤의 주인이 확인 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108종 4,687점의 유물 가운데 1,000여 점의 유물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의 고대문화실`은 원삼국시대부터 부여(사비)로 천도하기 전까지 공주(웅진)를 중심으로 한 백제문화를 접할 수 있는 문화재를 전시한다. 야외전시장에는 공주 일원에서 출토된 석조 유물 70여 점 전시되고, 어린이와 가족을 문화재체험학습 공간인 `우리문화체험실`이 있다.
한편, 공주 역사의 시작, 슬픈 전설을 간직한 고마나루가 있다. 공주의 옛 지명인 웅진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지금은 고마나루로 불리는데 ‘고마’는 ‘곰’의 옛말이며, 공주라는 지명의 유래도 여기서 출발한다. 곰나루에는 곰과 인간에 얽힌 전설이 내려온다. 곰나루 건너편에 있는 연미산에 암곰 한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곰나루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를 납치해 함께 살면서 새끼까지 낳았다. 어느 날 어부가 강을 건너 도망치자 버림받은 암곰은 슬픈 나머지 새끼들과 함께 물에 빠져 죽었다.
그후부터 강에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고, 사람이 죽는 등 불상사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암곰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곰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낱 전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1975년 곰나루 부근에서 돌로 만든 곰상이 발견되었다. 곰나루의 송림 사이에 자리한 웅신단에서 해마다 제사를 지내고 있다. 발굴된 곰상은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마치 귀를 접고 아양을 떠는 듯 귀여운 모습이다.
한편, 국립박물관 뒤란 언덕에는 노란란 ?? 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여성회원들의 사진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었다.
기행하면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먹거리’도 이에 못지않다. 박물관을 관람하고 충남 공주시 금성동에 위치하고 있는 토속식당에 들려 우렁된장찌개를 메뉴로 정해 토속식당만의 특별한 요리맛을 느꼈다. 한편 이 곳은 많은 외지의 손님이 찾고 관광객들이 입소문으로 많이 찾는 업소 중 하나로 꼽힌단다. 재래식 방법으로 직접 100% 국산 콩 된장을 담아 전통성을 살리는 동시에, 그 된장으로 우려낸 찌개는 담백하고 깊은 맛으로 그 일품을 더 해준다.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KBS, MBC등의 많은 언론사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우렁 요리의 참맛을 살려낸 맛집으로 홍보된 유명한 식당이다.
백제웅진시대 혼(魂)이 담긴 공산성 |
두 번째 기행지는 바로 공산성이었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110m의 조그만 언덕. 충남 공주의 공산성은 한때 지금의 경기도 일부와 충청·호남은 물론, 영남 일부를 아우르던 거대한 고대왕국의 중심지였단다. 초여름, 가족. 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아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는 여정은 어떨까요? 백제시대 도읍지인 공주를 방어하기 위해 축성된 산성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에 있다.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창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옛 유적지들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성곽 위를 걸어 봐도 그 재미를 배가한다.
성(城)에 올라서니 딱 천혜의 요새다. 외세에 밀려 공주로 내려온 백제인들 입장에서 한쪽 사면은 금강을 끼고, 다른 쪽 사면은 깎아지른 벼랑으로 막아선 지금의 산성 자리보다 왕성의 적임지는 없었을 터. '택리지'에도 "공주읍 북쪽에 작은 산 하나가 있는데 강가에 서리고 얽힌 그 모양이 공(公) 자와 같다. 산세를 따라서 작은 성을 쌓고 강을 해자로 삼아, 지역은 좁으나 형세는 견고하다"고 묘사해 놨다. 성벽은 2.6km로 한 바퀴 둘러보는 데 1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 곳은 백제가 멸망한 직후 의자왕이 공산성에 잠시 거처하기도 하였고, 신라 헌덕왕 14년(828)에 일어난 김헌창의 난이 이곳에서 평정되었고, 1623년에 일어난 이괄의 난 때는 인조가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하다.
장수왕의 계략에 빠진 개로왕은 아차산성 아래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웅대했던 한성백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백제의 문주왕이 새롭게 도읍을 정한 곳이 웅진. 바로 지금의 공주다. 다시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60여 년 동안 백제가 전성기를 누린 곳이다.
공산성은 웅진으로 천도한 백제의 왕성이었고,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조선시대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며 백제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곳이다. 금강을 천연 해자로 삼아 백제 때는 토성으로 쌓았으며, 지금의 모습은 조선시대에 쌓은 석성이다.
공산성을 돌아보는 방법은 금서루를 시작해 진남루, 광복루, 만하루, 공북루를 거쳐 다시 금서루로 되돌아오는 완주 코스가 있고, 금서루를 시작해 쌍수정과 추정왕궁지, 만하루, 공북루를 거쳐 금서루로 되돌아오는 코스도 있다. 대부분 후자를 많이 이용한단다. 판관, 관찰사, 목사 등 조선시대 공주를 거쳐 간 관리들의 선정비를 지나면 금세 금서루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짧은 오르막을 오르면 추정왕궁지와 쌍수정을 만날 수 있는데, 경사가 완만한 성벽길이 S자로 휘어져 제법 그림 좋은 풍경이 된다.
쌍수정은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내려와 머물렀던 곳으로, 난이 진압되자 기뻐하며 쌍수정을 호위하듯 서 있던 두 그루 큰 나무에 통훈대부의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봄에는 벚꽃과 신록이 화사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쌍수정 앞 넓은 공간은 백제의 추정왕궁지로 건물터와 연못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공산성 내에는 쌍수정 앞 연못처럼 또 하나의 연못이 있다. 금강변과 맞닿아 있는 만하루에 있는 연지가 바로 그것. 계단식으로 독특하게 조성된 이 연지는 만하루와 제법 잘 어울린다. 광복루나 공북루로 가는 오르막 정상에서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된다. 만하루에서 공북루를 거쳐 전망대에 올라서면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공주 신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전망대에서 금서루까지는 가파른 내리막 계단길이지만 공산성에서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전망 포인트다.
한편 기행팀이 공산성 입부에 도착하자 마침 주말마다 개최되는 수문병 근무 교대식을 재현하는 광경을 쉬이 볼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백제유물 보고(寶庫) 무령왕릉 |
웅진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주역이 바로 무령왕이다. 무령왕릉의 발견은 우리나라 고고학 발굴사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우연한 발견부터 졸속 발굴까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시키며 무령왕릉은 1,500여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것은 1971년 7월이었다고 한다. 폭우가 내리던 어느 날 일제강점기에 도굴되었던 6호분 내부로 물이 스며들자 도랑을 파다가 삽 끝에 걸린 것이 대발견의 시작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위대한 발굴이자 국내 고고학자의 최초 발굴이었지만,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무령왕과 왕비가 받은 세상의 빛은 따사로운 햇빛이 아닌 눈부신 플래시 세례였다. 밤새 유물만 수습해 결국 졸속 발굴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1,500년 전 백제의 혼이 담긴 수많은 유물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차분히 감상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국립공주박물관 뒷길로 접어들면 송산리고분군으로 이어진다. 송산리고분군은 모두 7기의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7기의 무덤 가운데 무령왕과 왕비가 잠들어 있는 무령왕릉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고분군 입구에서 앞쪽에 있는 2기의 고분 사이로 보이는 봉분이 바로 무령왕릉이다. 일제강점기 가루베 지온이라는 일본인이 무령왕릉 앞의 6호분을 발굴했다. 다행히 그는 뒤편의 봉분을 왕릉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오판이 무령왕릉의 도굴과 약탈을 막은 셈이니 천만다행이다. 그 덕분에 1,500년 전 백제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송산리고분군은 먼저 모형전시관부터 둘러봐야 한다. 송산리고분군의 내부를 실제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무령왕릉 역시 내부를 개방해오다가 고분 보호를 위해 지난 1997년에 영구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다한다. 모형관 내부에는 무령왕릉뿐 아니라 사신도 벽화가 발견된 6호분의 내부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모형관을 둘러봤다면 고분군도 한 바퀴 돌아보자. 완만한 오르막에 아래쪽 3기, 위쪽 4기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분군 끝자락에 있는 전망대에 서면 공산성이 한눈에 바라다보이고, 봉긋봉긋 솟아 있는 고분 너머로 채죽산과 금강이 내려다보인다.
무령왕릉은 우선 벽돌로 만든 지하 건축물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된 벽돌은 주로 연꽃을 소재로 한 무늬들로 표면을 장식하였기 때문에 전체적 외관이 퍽 화려하고 세련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왕과 왕비가 모셔진 바닥에서 천정까지의 높이는 3미터에 이르고, 입구와 현실의 천정은 아치형으로 축조하였다. 무령왕릉은 백제 시대의 건축수준, 예술적감각, 그리고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고한다.
백범 김구선생의 발자취가 남겨있는 마곡사 |
사곡면 태화산 기슭에 있는 마곡사는 백제 의자왕 3년(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가 중건한 절이다. '춘마곡'의 그 마곡사 맞다. 이 말처럼 봄 풍경 예사롭지 않은 곳이 여기다. 온갖 나무들마다 새순 돋고, 여린 이파리마다 빛 조각들 오글거리면, 이 모습 어찌나 화사한지, 이 때 되면 이 절은 속세가 아닌 선계의 풍경이 된다. 이제 눈이 호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를 위해 이 절은 꼭 기억해 둔다.
봄은 눈부시게 화려하고, 겨울 끝자락은 헛헛함이 가득하다. 그런데 가슴 먹먹하지 않은, 기분 좋은 공허다. 텅 비었지만, 마음 꽉 채워주는 풍경은 이 무렵 산사가 주는 선물이다. 이러한 감흥을 받으려면 지금 마곡사 역사기행을 해봄도 좋다고 생각해 본다.
마곡사의 대광보전의 퇴색한 단청과 꽃무늬 창살은 푸근했고 마당 한 쪽 심검당의 현판은 유독 크게 보였다. 번뇌를 싹둑 잘라버릴 칼 찾는 일이 '심검'이다. 싱싱한 것들로 마음 다시 가득 채우려면 묵은 것들 먼저 떼어내야 하니, 심검이 필요한 요즘이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영산전에는 묵직한 시간의 무게 오롯하다. '안고 돌면 아들 낳는다'는 대웅보전의 싸리나무 기둥은 어찌나 반질반질한지 보고 있으면 미소가 절로 나왔다. 라마교 영향 받아 독특한 장식 이고 있는 오층석탑 앞에 서면 호기심에 눈이 동그래진다.
마곡사(麻谷寺)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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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는 산태극(山太極) 물태극(水太極)의 태화산 자락에 위치한 천년고찰(千年古刹), 신라(新羅)의 자장율사(慈裝律師)가 백제(百濟) 영토(領土) 안에 창건(創建)한 절이다. 이런 연유(緣由)로 명필(名筆) 김생(金生)도 이 곳에 머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편액(扁額)이라 전해지는 마곡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이란 현판을 썼다고 한다. 물론 낙관(落款)이나 마곡사 사기(史記)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김생은 나뭇잎에 또는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씨를 익힌 지 40여년 만에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전해지는 사람이다. 파랑새 답사회원들과 빛바랜 정면 5칸의 중층건물(重層建物) 대웅보전 앞에 서서 주련(柱聯)이 일러주는 중도(中道)의 세계가 무엇인지 자문자답(自問自答)해 본다. 古佛未生前 옛 부처가 태어나기도 전에 응然一圓相 의연히 일원상(한 물건)은 있었다. 釋迦猶未會 석가도 오로지 만나지(알지) 못했는데 迦葉豈能傳 가섭이 어찌 능히 전하리. 本來非皂白 본래는 검고 흰 것도 아니요 無短亦無長 짧은 것도 없고 또한 긴 것도 없다.(필자 새김)
-여천 김도용교수님께서 기행 후 우리카페에 남긴 마곡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주련(柱聯) 이야기에서 인용 - |
한편 마곡사는 백범 김구가 청년시절 일본 특무장교를 살해한 뒤 수감 중 탈옥해서 은거했던 곳. 백범 명상길은 일정상 걸어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한때 마곡사에 머무른 백범 김구 선생이 산책하며 명상 즐겼다는 길이다.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이에 대한 분노로 백범은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다. 이후 이곳으로 와서 '원종'이란 법명으로 출가해 잠시 수행한다. 해방 후 그는 다시 이곳을 찾아와 마당 한편에 당시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 심었다 한다.
이 곳에는 백범선생님이 좌우명으로 삼으셨다는 서산대사의 선시가 걸려 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걷지를 마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蹟)
오늘 나의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뒷 사람들의 이정표가 될지니라,,
맺으면서..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잊힌 왕국' 백제를 만나고 싶다면 공주를 기행을 추천했다. 1400년 전에 휘발된 천년 고도. 솔직히 사람 귀한 시골이라는 점 말고는 눈에 담아갈 풍취를 기대하면 허망하기 그지없는 곳. 그러나 역사란 눈이 아닌 마음을 담는 것. 공주는 풍물기행이 아닌 역사기행을 다녀오는 곳이라 했다.
공주기행은 은근히 돈이 많이 든다. 어딜가나 입장료를 받는다. 지자체 입장에서야 박물관을 짓고 사적지를 보존하는데 쏟아 부은 막대한 투자금을 회수해야겠지만 영문 모르는 관광객에겐 영 억울하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관광객이 발길을 돌리고 마음마저 등지면 백제는 계속해서 잃어버린 왕국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된다. 공주하면 이외에도 갑사, 정립사지 등 역사유적지가 많으나 일정상 이 모든 곳을 보지 못하고 부산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것이 못내 아쉽니다.
답사의 또 다른 백미는 기행을 모두 마친 후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둘러앉아 지역 특산물 밤막걸리에 파전 그리고 부산서 준비해간 족발에 좋은데이(소주)를 걸치는 것이었다. 필자는 술을 마시진 않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즐기는 것. 이 또한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으랴!
한편 29차 기행은 ‘전남 구례 기행’이다 9월 셋째 주 토요일에 예정돼 있고 천은사, 사성암, 화개장터, 최참판댁을 둘려보는 코스다. 늘 그랬듯이 많은 님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공주에 계신 카페회원 영아미새님, 깃대봉(용철)님은 기행지에서의 만남에 반가웠으며, 최성호님의 성원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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