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상작품

[스크랩]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네팔상회 / 정와연(본명 정길례)

운산 최의상 2013. 9. 15. 16:13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네팔상회 / 정와연]

 

 

네팔상회/ 정와연

 

 

분절된 말들이 이 골목의 모국어다

춥고 높은 발음들이 산을 내려온 듯 어눌하고

까무잡잡하게 탄 말들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동네가

되고 동네는 골목을 만들고

늙은 소처럼 어슬렁거리는 휴일이 있다

먼 곳의 일을 동경했을까

가끔은 무명지 잘린 송금이 있었다

창문 없는 공장의 몇 달이 고지대의 공기로 가득 찬다

마음이 어둑해지면 찾는 네팔상회

기웃거리는 한국어는 이국의 말 같다

달밧과 향신료가 듬뿍 배인 커리와 아짜르


손에도 엄격한 계급이 있어 왼손은 얼씬도 못하는 밥상

그러나 흐르는 물속을 따라가 보면



다가가서 슬쩍 씻겨주는 손

그쪽에는 설산을 돌아 나온 강의 기류가 있다

날개달고 긴 숫자들이 고산을 넘어간다

몇 개의 봉우리가 창문을 두드린다

질긴 노동이 차가운 맨손에서 목장갑으로 낡아갔다

세상에는 분명 돌아가는 날짜가 있다는 것에 경배,

히말라야줄기를 잡아끄는 골목의 밤은

왁자지껄 하거나 까무잡잡하다

네팔 말을 몰라 그냥 네팔상회라 부르는 곳

알고 보면 그 집 주인은 네팔 사람이 아니다

돌아갈 날짜가 간절한 사람들은 함부로

부유하는 주소에서

주인으로 지내지 않는다

 

 

 

 

[2013 신춘문예 - 시 당선소감] "마음을 비운 자리에 긍정의 힘이 솟아"

 
꽁꽁 언 날에 훈훈한 전화 한 통을 받습니다. 마음은 화끈 달아올랐으나 몸은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서성거렸습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날이 내게도 오는구나,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이었습니다. 이쯤에서 돌아설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습니다.

기쁜 소식이 전해지려고 그랬을까요.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젖은 땅에 달라붙은 낙엽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빙판길에서도 여유가 생겼습니다. 마음을 비운 자리에 긍정의 힘이 솟았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날마다 감탄하며 살아간다는 어느 노인의 말이 실감 나는 한 해였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당선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음이 급변해 요동을 쳤습니다.

먼저 부산일보사에 감사를 표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한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들께도 큰절을 올립니다. 갈팡질팡하는 길목에 주단을 깔아 주셨습니다. 그 길로 선뜻 들어서기가 왠지 두렵지만 들어서렵니다. 주단이 끝나는 지점에는 더 높은 갈래의 길이 있다는 걸 잘 압니다. 열심히 찾아가겠습니다.


큰 도움 주신 숭의여대 강형철 교수님, 김양호 교수님, 박상률 교수님, 전기철 교수님께 감사 드립니다.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 마경덕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 고맙습니다. 문우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묵묵히 지켜봐 준 존경하는 남편 김종갑 씨, 시 쓰는 엄마가 멋지고 자랑스럽다는 세 딸 명륜 소나 안지, 아들 재환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이 무한한 기쁨과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립니다.

정와연(본명 정길례)/1947년 전남 화순 출생. 숭의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2013 신춘문예 - 시 심사평] "세상의 관절염 어루만지는 숙련된 직녀"]

 

 


출처 : 삼각산의 바람과 노래
글쓴이 : 흐르는 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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