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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들이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문단 새내기들이다. 왼쪽부터 단편소설 당선자 문경민, 시 당선자 문보영, 문학평론 당선자 박동억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자들이 20일 한자리에 모였다. 문단 새내기들이다. 왼쪽부터 단편소설 당선자 문경민, 시 당선자 문보영, 문학평론 당선자 박동억씨.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막판이 된다는 것 -문보영
후박나무 가지의 이파리는 막판까지 매달린다. 그늘을 막다른 골목까지
끌고 갔다. 막판 직전까지. 그 직전의 직전까지. 밑천이 다 드러난 그늘을
보고서야 기어이
후박나무는 그늘을 털어놓는다. 막판의 세계에는 짬만 나면 밤이 나타나고
짬만 나면 낭떠러지가 다가와서. 막판까지 추억하다 잎사귀를 떨어뜨렸다.
추억하느라 파산한 모든 것
붙잡을 무언가가 필요해 손이 생겼다. 손아귀의 힘을 기르다가 이파리가
되었다. 가지 끝에서 종일 손아귀의 힘을 기르고 있다. 그러나 양손이 모두
익숙지 않은 것들은 양손잡이일까 무손잡이일까. 그늘을 탈탈 털어도
가벼워지지 않는
애면글면 매달려 있는. 한 잎의 막판이 떨어지면 한 잎의 막판이 자라고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어서 손이 손바닥을 말아 쥐었다. 손을 꽉 쥐면
막판까지 끌고 갔던 것들이 떠오른다. 막판들이 닥지닥지 매달려 있다.
막판 뒤에 막판을 숨긴다.
능숙한 언어구사, 단단한 사유의 힘 갖춰
심사 중인 시인 김경미(왼쪽)·김기택씨.
본심에 올라온 15명의 응모 작품을 읽고 난 뒤 우리 두 사람은 기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다. 기쁜
건 응모작의 수준이 비슷하게 높아서였고 난감한 건 그 ‘동일한 높음’이 언어 기교 면에서만 그렇다는 점,
그 높은 기교를 감당할 만한 깊은 시적 내면이 잘 안 보여 시들이 대체로 공허하다는 점, 그리고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응모한 것 같을 정도로 응모 시들이 거의 다 비슷했다는 점 등이었다.
최종까지 남은 작품은 그런 난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이지윤의 ‘홀’과 문보영의 ‘막판이 된다는 것’ 두
편이었다. ‘홀’은 거울의 이미지를 현란하거나 난삽한 언어 구사 없이 신선하고 능숙하게 구멍 이미지로
환치해낸 뛰어난 작품이었다. 하지만 시에서는 주석까지도 시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한 설명 이상도 이하도
아닌 주석이 결국 치명적이었다. 그에 비해 문보영의 ‘막판이 된다는 것’은 산문시가 갖기 쉬운 상투적
서술의 위험을 아슬아슬한 정도에서 조절해내는 자유롭고도 능숙한 언어 구사와 그에 걸맞은 단단한 사유의
힘을 함께 갖춘 데다 나머지 작품 수준도 고르게 높아서 최종 당선작으로 합의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선까지의 정진이 시의 ‘막판’에까지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축하와 기대를 함께 보낸다.
◆ 본심 심사위원=김기택·김경미(대표집필 김경미)
◆ 예심 심사위원=정끝별·문태준